환경호르몬이라는 단어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1997년 일군의 일본 학자들이, 정소와 난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기형 소라고둥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흔히 사용되던 화학물질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며 이 물질들을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른 데서 기인한다. 1993년 네덜란드에서 성인 남성의 정자수가 지난 30년간 꾸준히 감소해왔다는 결과가 나오고 과거 널리 쓰였던 살충제 (가령 DDT) 및 합성수지에 사용된 가소제 (plasticizer, 가령 프탈레이트) 등이 사실상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발생한 결과라는 가설이 제시됨으로써 1990년대 중반 후반 활발한 연구를 이끌어내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 기초연구에 불과하던 이 결과들로부터 무시무시한 묵시론적 경고를 담은 책 "our stolen future" (1996년) 이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예언가들의 종말론이 제시되게 된다. 이 포스팅은 과연 1993년이후 이 분야에서 어떤 연구가 진전되었으며 과연 종말이 가까왔는가를 짚어보기 위한 것이다.
우선 용어정리를 해야 하겠다. 환경호르몬보다는 좀 더 정확한 용어, 내분비 교란물질 endocrine disruptor 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호르몬과 유사한 구조및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생체활동을 교란하는 일군의 유사호르몬을 일컫는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여러가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현재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유사에스트로겐으로 작용하여 특히 남성의 여성화를 유도한다는 가설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포스팅에서는 내분비 교란물질들이 유사에스트로겐으로 작용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과연 인공합성물 내분비 교란물질이 지금 널리 유포된 종말론에서처럼 그렇게 우려할만한 수준인가를 검토하도록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분비 교란물질들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1) 살충제류
2) 가소제류
3) 식물성 에스트로겐 Phytoestrogen
이다. 1) 살충제류 와 2) 가소제류는 인공합성물이고 3) 식물에스트로겐은 천연물이다. 인공합성물 중 현재 내분비 교란물질로 인정된 물질은 엄격한 통제하에 추적되고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살충제류 와 가소제류 내분비 교란물질은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에스트로겐이 달라붙는 특별한 에스트로겐 수용체 (Estrogen Receptor; ER) 이 알려져 있는데 여러가지 살충제 (가령 DDT) 및 가소제 (가령 Bisphenol A) 가 ER 에 결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이들의 구조가 에스트로겐과 일정부분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하 인용할 그림 및 테이블은 모두 Shaw, I.; McCully, S. International Journal of Food Science & Technology, 2002, 37, 471-476 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혀둔다.)

17B-Estradiol 은 대표적인 에스트로겐이고, Coumestrol 및 Genistein 은 대표적인 Phytoestrogen 이다. 위 그림을 통해 이들의 구조적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2. 인공합성물 내분비 교란물질은 과연 어느정도나 위험한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같은 정도로 한다고 할 수는 없다. 다른 물질은 다른 정도의 activity 를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activity 는 어느 정도일까? 에스트로겐을 1 로 놓았을 때 이들물질들의 유사 에스트로겐으로서의 activity 를 측정한 결과 (Toxicology and Environmental News, 1995, 3, 68-73) 를 보도록 하자.

대표적 살충제 및 가소제들은 (10^(-6) - 10^(-7)) 식물성 에스트로겐 Genistein (2*10^(-2)) 에 비해 5000 배 이상 낮은 activity 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논의를 진전하기 전에, 먼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항상 중요한 것은 절대량보다는 농도라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항상 에스트로겐 혈중농도가 높기 때문에 꽤 많은 내분비 교란물질이 체내에 유입되더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영향을 받는다면 배란이 촉진되는 것). 남성의 경우, 여성에 비해 에스트로겐 혈중농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에스트로겐 및 내분비 교란물질이 ER 에 붙게 되면 특정 단백질의 생산을 유도하게 되고 이것이 남성의 여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
영국에서 대표적인 내분비교란 살충제들의 일일 섭취량을 측정한 데이터가 있다 (표는 보이지 않음. 원 논문의 table 2 및 table 3). 성인남성의 에스트로겐 혈중농도는 20 ng/L 이다. 즉 피 1 리터에 20 ng (1 ng = 0.000000001 g) 존재한다. 성인남성은 대개 4 리터의 피를 가진다. 이 값에서부터, 하루에 섭취하는 내분비교란 합성물질들의 양과 이들이 에스트로겐에 비교하여 갖는 activity 를 감안하여 개략적으로 계산해보면 (즉 1 g DDT 는 0.000001 g 에스트로겐에 상당한다.) 살충제 내분비교란물질의 하루 섭취량은 에스트로겐으로 환산했을 때 0.005 ng/L 이고 이것은 정상 농도의 0.025 % 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가소제 내분비교란물질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보면 대략 정상농도의 0.67% 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합성물 내분비 교란물질은 인간에게 여성화를 유발하기에는 영향이 미미하다.
3.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어떤가?
콩과식물에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포함되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식물성 에스트로겐들 즉 coumetstrol, genistein, genistin 에 대해 동일한 계산을 반복하면 이들의 일일 섭취량은 157 ng/L 으로 계산되는데 이것은 성인 남성의 정상 에스트로겐 혈중농도의 8배에 이른다는 결과를 얻는다. 즉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약동력학적으로 유의미하게 성인 남성의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콩을 다량 섭취하는 일본의 경우 정자의 수가 적다는 것이 이미 알려져 있고, 마찬가지로 콩을 다량 섭취하는 한국의 경우도 정자의 수 및 활동도가 현저히 낮다는 것이 최근 보고된 바 있다. 일찍이부터 콩을 섭취해온 아시아에 비해 서구의 경우 비교적 최근부터 콩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것이 최근 정자수 감소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가설도 제시되어 있다. 또 최근 들어 채식주의가 늘어나는 것도 한 이유라고 하는 연구도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콩을 의식적으로 많이 먹기 때문에). 최근 30년간 정자수가 감소했다는 네덜란드의 연구이래, 다양한 인종과 국가에서 정자수에 관한 연구가 시도되었는데 어떤 경우는 전혀 정자수의 감소가 없었다고 하고 정자수는 지역/나라/인종별로 다양하다는 것이 밝혀져있다. 그리하여 사실상 정자수가 감소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보고도 있다.(Toxicology, 2004, 205, 3-10).
4. 그러면 합성물 내분비 교란물질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나?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적은 양이 존재하고 인간에게 영향이 미미하더라도, 우선 생태계의 작은 생물들에게는 큰 타격을 입힐 수 있고, 장기적으로 볼 때 축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방출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엄격하게 추적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위험이 알려진 이래로 사용을 줄인 결과 점점 측정되는 농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전술한 바대로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므로 공연히 공포에 떨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야생동물에 대한 영향에 있어서도 보고된 사례들은 짧은 기간에 지극히 높은 농도에 폭로된 대단히 극단적인 경우이다. 만일 이들에게 콩추출물 농축액을 지속적으로 먹였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칼로리는 칼로리인 것처럼, 에스트로겐은 에스트로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해마다 수많은 양들이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포함한 풀을 먹는 까닭에 새끼를 낳지 못하게 되고, 중국에서는 cotton seed oil (면실유?)을 요리에 사용한 결과 자손을 보지 못하다가 이 오일의 사용을 중지한 이후에야 자손을 볼 수 있었다는 사례도 있다. 이 오일의 주성분은 현재 남성용 피임약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즉 합성물보다는 천연물 내분비 교란물질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환경호르몬이라는 검색어로 구글을 돌려보면 (가령 환경호르몬 없애는 조리법);
암을 유발하고 내분비계를 교란시켜 심지어 아이도 유산시킨다는 환경
호르몬. 생활 습관을 조금만 바꾸면 유해한 환경 호르몬을 줄일 수 있답니다.
▶녹차 우린 물을 적극 이용하세요
녹차는 환경 호르몬의 흡수를 억제하고 몸 안에 쌓여있는 것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녹차를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답니다. 육류나 생선, 인스턴트 식품을 녹차 우린 물에 담갔다가 조리하는 방법을 써보세요. 몸에도 좋고 향도 좋게 한답니다.
▶랩을 씌우지 말고 전자레인지에 돌리세요.
왜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울 때는 꼭 랩을 씌울까요? 강한 전자파로 음식이 마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랩을 씌우지 않고도 음식은 잘 데워지고 스프레이로 물기를 주고 데우면 음식이 마를 염려도 없답니다. 랩이 녹으면서 환경 호르몬이 나올 염려도 있으므로 랩을 씌우지 마세요.
▶병조림 식품을 이용하세요
알루미늄 캔으로 되어 있는 통조림은 비스페놀A 같은 중금속이 음식 안으로 녹아 들어갈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병조림 제품을 적극 이용하세요.
▶인스턴트 음식은 접시에 담아 데우세요
요즘은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넣기만 하면 데워져 나오는 인스턴트 음식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1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그대로 데우면 발암물질이 녹아 나오므로 접시에 다시 옮겨 데우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런 식의 정보가 난무하는데 이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녹차가 몸에 좋다는데 녹차에는 발암성이 의심되는 타닌이 잔뜩 들어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녹차를 마시면 암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천지 어디에도 절대로 안전한 것이란 없고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정도인지 정량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심지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욕조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이 흡수되므로 피하라는 이야기까지 난무하는 지경에 이르면 대략 아스트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내분비 교란물질을 찾아내고, 추적하고, 작용 경로를 연구하고 있다. 위험이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한, 즉 위험이 관리되고 있는 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위의 소위 생활의 지혜들은 따라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저런 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무슨 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 포스팅의 결론.
긴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반론 및 이견은 환영하지만 생산적 논의를 위해, 가급적 믿을만한 근거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덧글
happyalo 2005/02/17 01:06 # 답글
콩이 저런 면도 있군요. 예전에 TV 다큐에서 콩의 장점을 막 부각시키면서 전세계적으로 콩 섭취량이 한국인이 가장 높다는 걸 보여준 적이 있는데(중국, 일본보다도 훨씬 높더군요).뭐든 과식하지 말고 골고루~ 이게 최선인 듯. ^^
기불이 2005/02/17 01:19 # 답글
콩 및 콩의 유사에스트로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므로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포스팅의 주제는 사람들이 겁에 질려 피하려고 하는 물질들은 맨날 먹는 콩에 비하자면 영향이 미미하니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즉 Do not Panic! 입니다.
Sieg 2005/02/17 14:52 # 삭제 답글
1. 저 통조림 얘기하니까 생각나는데... 제가 아는 놈 중에 일주일에 한 번 씻을까 말까해서 꼬질꼬질한 주제에 캔 음료가 몸에 안 좋다고 안 마시는 놈이 있지요.-_-;2. 역시 기불이님, 멋지십니다. 부모님에게도 저 사실을 알려드려야 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