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아래 한국판 수퍼사이즈 미가 끝났다는데 라는 글에 맨땅에헤딩님이 덧글로 데이터 포인트 하나짜리 실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게 왜 통렬한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서 잠깐 코멘트.
사람들은 자기 개인체험을 상당히 (사실은 절대적으로) 믿는다. 미국은 워낙 다인종사회인데 (특히 학교에 있는) 한국사람들끼리 이야기하다보면 중국인은 이렇다, 일본인은 이렇다, 미국인은 이렇다 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들어보면 한명이나 두명 많아야 서너명을 겪어보고 그 나라 백성 모두에 대해 평가내리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 인구가 공식적으로 14억 이상이고 실제 수는 아무도 모르는데 그 중 "미국에 있는 특정학교의 특정과에 있는" 중국인 서너명을 보고서 전체 중국인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아무리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열 아닌가. 열을 보고 14억을 알 수 있지는 않다.
옛날에 물파스로 모든 병을 고치는 노인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아마 출발은 두통이 났는데 우연히 물파스를 발라봤더니 곧 괜찮아졌다는 개인체험이었을 것 같다. 원래 두통이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지만 여기서 두통에는 물파스가 즉효라는 개인체험이 생긴다. 이후에 다른 데도 응용해본다. 복통이 났는데 물파스를 발랐더니 곧 괜찮아지더라. 역시 대부분의 복통도 물파스를 바르지 않아도 좋아지지만 어쨌든 복통에도 물파스는 즉효. 여기서 그치면 그만인데 이웃에게 물파스요법을 권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보자. 급기야 TV 에도 나오고 여기저기 아프면 물파스를 바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면? 물파스를 소염이나 모기물린데 말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외계인을 고문할 때 뿐이며 (이경우는 먼저 이태리타월로 껍질을 박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구인의 두통 복통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개인적 체험의 열렬한 간증은 신도를 낳고 일종의 종교적 체험으로 승화된다.
물파스는 그래도 문제가 없는 편이지만 이런 류의 체험들이 쌓이고 악화되면 소위 대체의학이 된다. 안수기도라든지 기적의 항암제 등등이 떠오른다. 안수기도를 행한 후, 호전된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수기도 때문에 병이 악화되거나 때론 사망해버린 사람들은 잊혀져버린다. 세상에 기적의 항암제 (어떤 종류의 암에도 다 듣는) 란 것은 있을 수가 없는데 암이란 것이 단일병종이 아니라 세포가 자살명령을 어기고 마구 증식하는 현상의 총칭이기 때문이고 그 발병원인은 이루 셀 수도 없을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제품을 먹고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고 이들은 열렬하게 그 제품의 효능을 간증하는 전도사로 기능하는데 나는 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효과가 있었던 서너명보다 효과가 없었던 나머지 사람들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통계적으로 효과가 있었을 리가 없다고 본다. 이건 마치 설탕이 일부 암환자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보였다고 해서, 설탕을 항암제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해프닝이다.
생각해보면 데이터 한 포인트짜리 (n=1) 실험은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하고 있다. 우리의 개인적 체험들은 다 이런 종류의 실험들이다 (가령 우유를 먹으면 설사를 한다든지). 이 결과들은 자신에게는 분명히 진리이겠지만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결과들이다 (가령 우유먹어도 설사안하는 사람도 많다). 가령 예를 들어 보통 우유를 먹었을 때 설사를 하지만 유지방이 제거된 우유를 마셨을 때 설사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에게는 유지방없는 우유가 설사를 피하면서 우유를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효과를 보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데 우연한 체험은 신념이 되고 이제 타인에게도 그 신념을 전파하게 된다. 그 신념이 성립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저 눔이 뭔가 잘못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게 된다. 보통 저런 사람일수록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으니까.
이것은 일종의 종교적 체험이다. 사업이 어려워서 기도를 했는데 며칠후 갑자기 사업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간증을 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를 믿고 사업을 번창하게 해주시오 하고 기도를 한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도가 부족한 것이니라. 다시 우유 이야기. 저 경우 "처음이라 그럴 수 있으니 꾸준히 드셔보세요" 가 보통 발전하는 양상이다. 역시 기도가 부족한 것이지. "그 우유가 안맞나 보네요. 다른 회사의 유지방 함유 우유를 드셔보시죠." 식의 접입가경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우유 안먹고 살면 될 것을. 두유 먹어도 되고, 다른 대체식품 많은데 뭣하러 저렇게 설사해가면서 자기한테 맞는 우유를 찾기 위해 애써야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은 이미 증발한지 오래.
이게 몇몇 사람만 저러면 그냥 비웃고 말면 그만인데 만에 하나 이 사람 이야기가 "유지방 제거 우유먹으면 설사. 설사 막으려면 유지방함유 우유 먹어야" 라는 타이틀로 언론에 소개되고 동조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사태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도 사실 비일비재하다. 일회용 밴드 다이어트니 랩 다이어트니 포도 다이어트니 하는 것들이 대표적 사례들이고 무식하거나 다른 의도가 있거나 해서 소위 대체의학을 그럴싸하게 써주는 기사들도 많다. 엊그제 TV 를 보다보니 배주위에 랩 칭칭 감는 여자가 나왔는데 그 여자 말로는 랩이 지방을 빨아들인다나. 아스트랄해요. 목욕탕에서 뱃살을 주무르면 지방세포가 터진다는 사람들도 많으니 이것도 아스트랄. 세상은 아스트랄하고 그중에 제일은 데이터 한포인트짜리 실험이니라.









덧글
danew 2004/11/15 09:21 # 답글
편향확증이란 정말 무섭습니다.
기불이 2004/11/15 09:33 # 답글
덕분에 좋은 말 하나 배웠습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편향확증에 대해서는
http://www.rathinker.co.kr/skeptic/confirmbias.html
편향 확증이란, 선택적 사고의 일종이다. 사람은 자기의 신념을 확증해주는 것들을 쉽게 발견하거나, 찾는 경향이 있으며, 반대로 자기의 신념에 반하는 것은 무시하거나, 덜 찾아보던가, 혹은 낮은 가치를 주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보름달 저녁에는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사람은 보름달 저녁에 일어났던 사고만 주목해 버리고, 보름달 이외의 기간에 일어났던 사고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것이 반복되면, 보름달이 사고와 관계있다는 신념은, 부당하게 강화된다. (하략)
기불이 2004/11/15 09:38 # 답글
보통 "효과를 본 사람이 있대두" 가 나오면 위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대충은 맞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조용히 이야기해주세요. "그거 편향확증이야. 근데 너의 모두스 비벤디는 뭐지?"
이후 2004/11/16 08:04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링크에 링크를 타고 들어와서 재밌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수퍼사이즈에 대해서 조금은 편향된 의견을 갖고 계신 것 같아서 짧은 글을 남깁니다.저 역시 '맥도날드 한달 먹기'는 어이없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왜 그런 다큐멘터리가 나왔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만도 1위 미국 2위 호주 (저는 호주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은 여행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적어도 호주에서 비만은 노동계급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소득이 높은 사람들과 그 자녀들은 맥도날드는 커녕 수퍼마켓의 식품도 잘 먹지 않습니다. 주로 고급화된 식품점이나 백화점 그리고 고메푸드를 먹겠죠.
이후 2004/11/16 08:04 # 삭제 답글
여기서 우리는 한국과 (대부분의) 서구 국가와의 큰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서구국가에서는 모든 음식점의 음식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한국에서는 3000-5000천원으로 맥도날드도 먹을 수 있지만, 동시에 비빔밥도 사먹을 수 있고, 동네 음식점이나 어디서든 간단하게 괜찮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기불이님도 외국 생활을 하고 계셔서 아시겠지만, 이곳에서 $3-$5 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은 패스트푸드 밖에 없습니다. 테이크어웨이 국수도 적어도 $10은 되지 않습니까. 이곳에는 음식점 가이드북 중에 cheat eat guide 라는 게 있는 데 이것은 AUS $25 이하로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원화로는 20000원이 넘지요.
이후 2004/11/16 08:05 # 삭제 답글
그렇다면 수퍼마켓에서 파는 재료는 싸니까 사다 해먹으라고요? 요리는 강도높은 노동 중 하나 입니다. 특히 노동계층에게 시간을 내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겠죠. 결국 패스트푸드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노동계층, 그리고 수중에 돈이 별로 없는 어린이들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매일 매일 맥도날드를 먹습니다. 그리고 점점 뚱뚱해집니다. 뚱뚱해져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이곳 저곳 몸이 아프겠죠.
이후 2004/11/16 08:05 # 삭제 답글
물론 맥도날드를 사랑하는 중산층도 있을테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돈벌고 있는 한 기업을 전혀 다른 잣대로 재단하는 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수퍼사이즈미를 보고 좀 귀찮아도 한 두 번은 더 요리를 하고 한두번은 더 도시락을 싸서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있고 좀 더 건강해진다면 그저 멍청한 수퍼사이즈미야, 라고 말할 수 만은 없는 문제가 아닐까요.그럼 이만.. ^^
기불이 2004/11/16 08:31 # 답글
이후님// 저는 "한국판" 수퍼사이즈 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건데요.. 미국판에는 관심없어요... 그리고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중국음식도 5 불이면 꽤 괜찮은 거 먹을 수 있습니다. 맥도날드 싸지 않아요..
맨땅에헤딩 2004/11/16 14:48 # 삭제 답글
이후님// 목적이 중요하거든 수단에 신경을 좀 써야죠. 목적이 중요하다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아서는, 같은 광신도들끼리 기분은 좋아질지 몰라도 대중 상대로는 목적달성에 반드시 실패합니다. 뭐 당장 생각나는 예가 몇종류나 있지만...
이홍기 2004/11/17 03:33 # 답글
덕분에 아주 좋은 사이트를 알게 됐네요. 창조과학이나 사이비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제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곤란했었는데 좋은 사이트를 알게 돼서 너무 행복합니다.
링크타고 2009/12/31 09:40 # 삭제 답글
글 참 재미있습니다. 이글루스에 좋은 블로그가 많네요. 우리나라 인터넷 쓰레기 라고 생각했었는데, 좋은 컨텐츠를 채워주시는 분들이 계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