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 연재되던 병아리 양육기 가 끝이 났다. 전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완결되었기에 다 읽어보았다.
생명을 기른다는 것은 그 생명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듯이는 못하더라도, 비록 말못하는 짐승이라도, 길렀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팔기 위해서, 먹기 위해서 기른다면 아예 물건처럼 키워 정을 붙이지를 말 일이고 정을 붙여 길렀으면 숨을 놓는 그 순간까지 정성을 기울일 일이다.
기사중에도 나오지만 팔려나오는 병아리는 대개 수평아리들이다. 공장에서 부화가 되자마자 병아리들은 감별사의 손에서 수평아리와 암평아리로 분류된다. 암평아리는 브로일러 공장에서 길러지고 수평아리는 몇몇만 남기고 시장바닥으로 팔려나가, 기사중에 나오는 아저씨의 혼잣말처럼 "....죽으러 간다."
브로일러공장에서는 좁은 공간에 병아리들을 잔뜩 넣고 기른다. 밀도가 높으니 한마리가 병이 나면 병이 마른 들에 불퍼지듯 번져 피해가 크므로 사료에 항생제를 넣어야 한다. 공장에는 밤이 없다. 밤에도 훤히 불을 밝혀놓고, 계속 사료를 공급하므로 병아리들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자라, 두달이 되면 출하가능한 크기가 된다 (닭은 어두워지면 움직이지 않고 당연히 모이도 먹지 않는다). 옛날에야 큰 닭을 좋아했지 요즘은 너무 커도 육질이 질겨 좋지 않으므로 중병아리가 되면 출하한다. 그동안 닭들이 하는 것은 케이지에 묶여서 모이를 먹다가 졸다가 모이를 먹다가 졸다가... 2개월간만 기르는 것은 그 이상 키워봐야 사료값만 들어갈 뿐 더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잔인한 경제학적 결론). 그리하여 기사중에 나오는 모든 닭의 나이는 똑같습니다. 몇살일까요? 의 정답은 2 개월이다. 달걀을 낳기 위해 길러지는 닭은 대개 더 살지만...
인간은 잔인한 동물이다. 먹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케이지에 가두어서 쉴새없이 모이를 먹여 기른다. 프랑스에서는 좋은 포와그라를 얻기 위해 오리 주둥이에 깔때기를 꽂아 모이를 붓는다고도 한다. 어디 닭만 그런가. 소와 돼지도 비슷하게 길러진다. 땅넓은 나라에서는 가축을 넓은 대지에 풀어서 키우기 때문에 훨씬 스트레스가 적은 환경에서 자라지만, 결국 필요한만큼 키운 다음 도살하여 축산제품으로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채식주의자가 되면 된다. 그러면 채소는 다른가? 좁은 밭에 일렬로 꽂혀서 길러지고 적당히 크면 사정없이 뽑아버린다. 브로일러 공장에 가득한 닭이나, 좁은 밭에 촘촘하게 심어져서 키워지는 식물이나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식물은 덜 불쌍한가?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어쩌면 아름답게 일렁이는 벼로 자랄 수도 있었던 벼의 씨앗이다. 남의 자식을 매일매일 끓는 물에 삶아서 먹는데 이것은 안불쌍한가?
인간은 잔인한 동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란 종의 운명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남의 생명을 취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의 생명은 타인의 희생에 바탕해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면서 먹어야 한다. 우리는 짐승의 동의없이 그 생명을 빼앗아 그 육신을 취한다. 그러므로 "자살하는 소" ("우주 가장자리에 세워진 레스토랑") 를 만나기 전에는 우리는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음식을 대해야 하고, 가능하면 남김없이 깨끗하게, 그리고 맛있게 먹는 것이 그들에게 최고의 감사를 보내는 방법이며 최선의 위령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인들이 식사전에 이따 다께마쓰~ 하는 것은 본받을만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낚시와 사냥을 아주 질색한다. 특히 낚시와 사냥을 스포츠라고 부르는데는 얼굴이 파랗게 질릴 지경이다. 스포츠란 것은, 상대의 동의하에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던가? 누가 물고기와 오리떼에게 "이건 게임이야. 나는 총으로 너희를 쏘고 너희는 피하는 익사이팅한 게임이지" 혹은 "내가 갈고리에 미끼를 달테니 너희는 얼마나 그걸 안물고 견딜 수 있나 한번 해볼래?" 하고 물어보기라도 했나? 일껏 그 연약한 턱을 날카로운 바늘로 낚아채어 잡아올려놓고 "생명은 소중한 것" 어쩌구 하면서 다시 풀어놓는데는 더 할 말이 없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있나. 차라리 깨끗하게 죽여라! 먹지도 않을 것이면서 다른 생명을 잔인하게 괴롭히거나 죽이는 것들은 참을 수가 없다. 우익보수들이 사냥을 즐기고 소위 스포츠 낚시를 즐기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윤회론이 참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른 생명을 저렇게 간단하게 뺏는 것들은 다음 생에서 자기가 목숨을 빼앗은 존재로 태어나서 그 죄를 갚아야 할 것이다. 관음보살의 옷깃에 수미산이 닳아서 평지가 되는 시간의 그 몇억배라도, 자기가 재미로 뺏은 생명을 되갚아야 비로소 윤회억겁의 고리에서 한단계 위로 올라갈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트랙백을 걸 데가 없어서 뉴스비평에 거는데 과학기술 트랙백이 있었다면 거기 걸었을 것이다. 이글루스 운영진은 과학기술 트랙백을 만들어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덧글
happyalo 2004/12/16 00:36 # 답글
치킨런이 떠오르구요그리고 탁닛한의 '화'에 나온 구절이 떠오르구요. (우리에서 자란 동물들의 화가 오죽 하겠냐, 축적된 그 화가 먹는 인간에게도 들어온다. 그러니 차라리 소식을 해라 뭐 그런 요지)
그리고 사냥과 낚시는 저도 절대 스포츠라 생각지 않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놀다니요... 집안의 벌레들은 해충이랍시고 잡지만, 아이가 밖의 벌레들은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는데요. 어쩔 수 없이 먹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가지고 논다는 것은...
오늘 환경스페셜이라는 프로에서 실험실의 동물들인가 하는 걸 조금 보았습니다. 동물 실험 그자체야 어쩔 수 없다 해도(물론 그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과정(예를 들어 다루는)도 그렇고 기준도 그렇고 역시나 생각거리가 많더군요.
기불이 2004/12/16 02:40 # 답글
한국에서 일했던 회사는 대단히 엄격한 윤리규정에 따라 동물들을 대했습니다만 작은 회사들은 아무 생각 없겠지요. 한국서는 일년에 한번 위령제를 지냈었는데 죽어간 동물들에게 사죄하는 의미깊은 자리였습니다.
헐렁 2006/08/10 18:58 # 답글
이글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