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지껏 글을 써올 적에는 과학에 의해 주장된 바가 옳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글을 써왔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함직하다. "과학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 있나?"
훌륭한 생각이다!
대표적인 인간의 사고방식 두 가지는 종교와 과학이다. 어떤 사고가, 검증가능한 과정을 통해 발전하면 과학이고, 검증불가능하면 종교라고 할 수 있겠다. 누가 납에서 금을 만들었노라 하면 신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니 이 년 (놈) 은 마녀 (마법사) 다 하고 잡아죽이는 것은 종교이고, 예전에 봤던 어떤 카툰에서처럼, 자세한 과정과 논증을 기재해서 논문을 쓰고, 리뷰어들에게 제출하여 다른 사람들이 재현할 수 있으면 믿어주겠다 고 말하는 것은 과학이다.
종교는 의심해선 안되는 것이고 과학은 의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보지 않고 믿는 자에게 복이 있는 것이 종교이고, 근거없이 믿어줄 수 없노라는 것이 과학이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결과라도, 제대로 된 논리전개를 통해, 도저히 반박할 수 없을만한 논리적 정합성을 보이고, 바람직하게는 그 논리에 따른 증거나 재현실험이 가능한 경우 믿어주는 것이 과학이고, 기존의 교리에 어긋나면 바로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이 종교이다.
그러면 과학 (굳이 말한다면 서양과학) 은 원래 이랬나? 절대로 아니다. 현대화학은 라브와지에에서부터 출발했다. 질량이란 창조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여 근대화학을 세운 라브와지에는 비로소 연금술에서 화학을 분리해냈다. 그는 비로소 종교에서 과학을 분리했다. 그 이전 서양과학은 천년전부터 내려온 아리스토텔레스의 교과서를 끼고 살고 있었다. 라브와지에 전에는 과학이란 미신과 한몸이었다.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과학은 과학으로 바뀌어갔다. 핍박받은 과학자들의 예를 들자면,
지금은 상식인 혈액 순환론을 주창한 윌리엄 하비는 평생동안 핍박받았다. 그전에는 혈액은 간에서 만들어져서 심장에 도달하여 사라진다고 믿었다. 하비는 잠깐만 계산을 해봐도 그렇게 많은 혈액을 쉬지 않고 만들어내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혹시 온몸의 혈관은 다 연결되어서 계속 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상을 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천년을 내려온 고전을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평생 박해를 받았다.
옛날에는 산모들이 아이를 낳다가 많이 죽었다. 올리브 호움즈는 의사가 손을 씻으면 산모가 덜 죽는다고 주장했다가 혼이 났고 논문의 게재를 거부당했다. 그 당시 의사들은 환자를 보면서 손을 씻지 않았고 더러운 손으로 이 산모를 만지다가 저 산모를 만지는 등 사실상 의사들이 병원균을 산모에서 산모로 옮기고 있었다. 젬멜마이스도 1847년에 의사가 손을 소독하면 산모사망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자신의 병원에서 실증했는데 의사들이 "신사의 손은 깨끗하다"고 개기는 바람에 고생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지금은 상식이 됐지만 이런 선구자들이 자신의 시대에는 고생을 했다.
과학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과학이 됐다. 당연하다고 믿어진 것들, 대대로 전해진 지식들을 의심하고, 검증하면서 스스로 체계를 세웠고, 종교가 믿음에 기반하는 것과 달리 근거에 기반하는 사고체계를 확립했다. 그러므로 과학의 세계에서는 토론은 있을 지언정 신앙은 없다. 오늘날 사실이라고 믿어지는 것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하루아침에 폐기될 수 있는 것이 과학의 세계이고, 이것이 내가 과학에 기대는 이유이다.
나는 글을 쓸 때, 단순히 주장을 쓰지 않고 왜 그런지를 가능하면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과학적 지식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저 사람은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니까, 하고 믿어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생각해보니 이것이 맞구나 생각해보니 저것이 틀렸구나 하는 결론을 얻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내 주장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기보다는, 과연 어느쪽 주장이 옳은지 스스로 생각하길 원한다. 모기불이가 이렇게 말하니 이게 맞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그만둬주길 원한다.
과학사의 뒷얘기 II (A. 섯클리프, 전파과학사) 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날 영국왕 찰즈 2세가 왕립학회의 과학자들에게 물었다.
"대야에 물을 담고 살아있는 물고기를 넣으면 무게가 늘어나지 않는데, 죽은 물고기를 넣으면 물고기 무게만큼 무거워지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 기묘한 문제에, 과학자들은 당황했고 오랫동안 토의를 거듭했는데, "무언가 고민하기 전에 그게 정말로 일어나는 현상인지 확인해보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어느 과학자의 소박한 질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여하튼 뻔한 이야기지만 하다하다 답을 못찾은 과학자들은 비로소 직접 실험을 해보기로 했고 결국 왕이 자기들을 놀린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왕립학회에 갑자기 편지가 왔다. 어떤 수부(水夫)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 붕대를 하고 "타르를 충분히 발랐더니" 3일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걸을 수 있었다고 적혀있었다. 과학자들이 과연 이게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편지가 왔다고 한다: "그 수부의 발이 의족이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을 잊었다."
이 두 이야기는 모두 가공의 이야기일 확률이 크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교훈은 중대하다: 결코 어떤 권위에도 눌리지 말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을 할 것.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은 정말 말이 안될 확률이 높다. "정말 신기하게도" 휘어진 나뭇가지만 가지고도 물을 찾는다면, 그게 없이 그냥 찔러도 물이 나올 확률이 높다. 다른 사람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지 말고, 그게 정말인지 확인해볼 것. 떠도는 이야기는 대개 거짓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과학을 신뢰하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의 거짓말이나 과장에 휘둘리는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다: 과학은 결코 절대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아는 어떤 지식보다는 믿을 만하다. 과학은 자신이 틀렸을 때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를 수정하는 사고체계이기 때문이다.









덧글
happyalo 2004/10/28 15:18 # 답글
와~ 하고 단순 감탄만 하지 말라셨지만, 어쩔 수 없이 와 하고 단순 감탄을 하게 되네요...
intherye 2004/10/29 01:47 # 답글
아까 이오공감에 잘못된 링크와 함께 본문내용과 제목만 잠깐 올라와 있더니, 지금 보니 수정 후에 다른 글로 교체되어 있군요. 으음, 어떻게 된 일일까 궁금해하는 중입니다. 아마도 "이오공감 최종후보"까지 올라갔다 모종의 이유로 다시 밀려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안타깝게도.
기불이 2004/10/29 13:14 # 답글
intherye 님// 아, 그랬던가요? 흠.
J 2005/05/06 04:25 # 삭제 답글
과학은 방법론이고 종교는 결과론입니다.따라서 종교에 대해 '왜'라는 것을 묻더라도 종교라는 것 자체에 이유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답변을 구할 수 없고
과학적이라고 말하면서 중간검증과정 없이 결과만을 내놓는 일이 용서 받을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겠지요.
또한 그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와서 '비과학적이다'라는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석불가능하다'란 의미가 아닌 '있을 수 없다'라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행태를 볼때에 과학이 결과론으로 변질되어가려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만듭니다.
('과학적이다'란 말이 때때론 절대적인 신빙성을 가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경개심을 늦춰선 안되는 것이 한때에 '과학적으로 무해했던' 수많은 화학물질들이 뒤늦게서야 유해물질로 분류되는 과거의 여러 사건들에서 볼 수 있지요. 물론 잊어선 안되는 것은 '과학'이란 접근방법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착오나 시대적 한계(각종 계측장치의 미발달로 인한 관측불능에 의한 누락등)쪽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2006/01/25 01:05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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