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플라시보 by 기불이

유기농의 진실


플라시보라는 것이 있다. 가령 어떤 약이 효과가 있나 없나를 알아보려고 사람에게 투약한다고 치자. 쥐한테 찌를 때야 쥐는 이게 뭔지 모르니까 상관없지만 사람은 저게 "약" 이다 라는 것을 알고 있다. 놀랍게도 진짜 약물대신 설탕을 넣은 캡슐을 먹여도 암도 낫기도 하고 그런다. 때문에 어떤 약을 먹였을 때 치료효과를 보인 모든 사람에게서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진짜약과 가짜약을 랜덤하게 섞어서 의사에게 준다. 약을 주는 의사도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른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실험이 끝난 다음에, 약의 번호를 추적해서 이게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확인하고 진짜약에서 효과를 보인 사람의 수와 가짜약에서 효과를 보인 사람의 수를 비교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판별한다. 여기서 가짜약과 진짜약이 통계적으로 구분이 안가면, 이 약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정, 개발이 중단된다. 여기서의 요점은,

1. 가짜약도 치료효과를 보일 수 있다 (인간의 심리가 신체의 작용에 영향을 준다): 이것을 플라시보라고 부른다.
2. 진짜와 가짜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어야만 이를 효과가 있다고 부를 수 있다.
3. 이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 blind test 이다 (즉 진짠지 가짠지 미리 알면 안된다).




이 blind test 로 재미를 본 기업이 펩시콜라이다. 이건 무조건 남는 장사였는데 코카콜라가 좋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나오지 않는 다음에야 펩시도 먹을만 하네라는 소리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펩시의 목표는 자기들이 코카콜라보다 낫다가 아니고, 코카콜라만큼 먹을만하다가 아니었던가. 사실 눈감고 마셔서 둘의 맛을 정확하게 구분할 사람은 드물다. 까만 설탕물이 거기서 거기지 뭐 특별히 다른 게 있겠나. 거기다가 오래 열어놔서 김빠진 콜라라면 더더구나. 참가자의 반 아니라 3분의 1만 펩시를 골랐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아, 펩시도 맛있네 하고 생각해서 다음부터는 펩시도 마실 것이고 펩시는 그냥 소비자를 줍는 거고 코카는 그냥 잃는 것이다. 거기다가 혹시 코카콜라 병은 더 오래 열어놨다든지 하는 장난을 치면....

그래서 blind test 라는 것도 엄격하게 하지 않으면 사실 의미가 없다. 이런 실험을 대충하면, 어떤 식으로든 악용되기 쉽고, 특히 어떤 특정한 결과를 얻고 싶은 쪽에서 공정해보이지만 사실은 유도된 실험을 많이 한다.

The Scientist 라는 잡지를 훑어보다가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편집자의 글 (Upfront editorial) 이다.

그는, 영국 종신 상원의원 Dick Taverne 을 인용하여 "유기농이란 과학적 오해 scientific howler 에서 비롯된 사기극" 이라고 말한다. 그 오해란 천연 화학물질은 좋고 합성 화학물질은 나쁘다 라는 것이다. 그는 유기농은 더 안전한가? 라고 묻는다. 영국 식품 표준국의 head 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한 잔의 커피가 적어도 일년간 식품에서 섭취하는 발암위험이 있는 합성 살충제만큼의 천연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이 말은 사실일까? 나는 사실일 것이라 믿는다. 용어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커피에는 물론 천연 발암물질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 현재 사용되는 합성 살충제는 그 발암 위험성을 충분히 조사하고 관리하고 있어서 심각한 발암위험이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므로 이 발언은 합성 살충제는 발암위험이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라는 말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유기농이 더 안전하다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비료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비료는 발암물질이 아니란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므로 살충제가 더 위험하지 않다면, 유기농은 더 안전하지 않다. 그런데 하나 덧붙인다면, 천연발암물질도 엄청나게 많다. 천연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안전하지 않다.

그러면 맛은 어떤가? 여기서 blind test 가 나온다. 눈을 감고 먹어본다면 유기농과 재래식 농산물의 맛을 구분할 사람은 거의 드물다고 단언한다. 거기다가 유기농내에서도, 재래식 농산물 내에서도, 농장의 토질과 그해 기후 등등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객관적으로 맛을 비교할 방법은 없다.

도대체 그렇다면 왜 유기농이 인기인 것인가?

그는, 그 비밀은 대중의 만족감이라고 말한다. 대중은 비싼 야채를 유기농이라고 사서 소비하면서, 자신의 건강에 유의하고 건강을 위해 더 비싼 지출을 할 수 있는 자신에게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유기농 과일을 주면서, 자기 자식에게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훨씬 비싼 과일을 사 줄 수 있을만한 위치에 있는 자신에게 뿌듯해하는 부모가 없다고 말할 수 있나? 소위 명품 핸드백을 사고 싶어하는 것과 마찬가지 심리가 아닐른지.

BBC 의 보도에 따르면, 어떤 영양학자는 사람들은 유기농이 심지어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건강도 고양시킨다고 느끼고 이는 자신들이 더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식품을 고를 때, 이것이 그들의 well-being 의 느낌과 낙관주의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번역하자니 장황한데 요점은 유기농을 살 때 그 돈값은 기분이 좋아지는 값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유기농이 비쌀 이유는, 그것을 살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붙였다, Should we tell them?

글쎄, 내 질문도 마찬가지다. 이걸 포스팅을 해 말아? 그냥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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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ina 2004/10/28 14:11 # 답글

    '복권을 왜 사는가?'라고 경제학자들이 묻는 것과 비슷한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쪽도 저쪽도 결국 '진실'보다는 주관적인 효용 - 기분 좋음, 들뜸, 기대감...등등이 사람들의 행동에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거군요.
  • EIOHLEI 2005/10/19 09:58 # 답글

    안녕하세요

    우연찮게 찾아와서 커피란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일부내용을 좀 가져가려 합니다.

    [한 잔의 커피가 적어도 일년간 식품에서 섭취하는 발암위험이 있는 합성 살충제만큼의 천연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커피동호회에서 좀 써먹을려구요



  • 기불이 2005/10/19 12:55 # 답글

    님의 블로그에도 남겼습니다만

    나중에 깨달은 바입니다만, 커피에는 천연발암물질 아크릴애미드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크릴애미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현재 목하 평가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문장은 아크릴애미드를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결과는 유사하죠. 여기저기서 안전하게 먹으려고 애써봐야 커피에도 이미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볶는 과정에서 생기므로 피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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