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단상 by 기불이

정수기 없다.

내가 일생을 걸고 매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대중의 과학에 대한 무지를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인간들에 대해 폭로하는 일이다. 이것은 과학을 배운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트랙백한 홍명보님의 글에 인용된, 박재광 미 위스콘신대 교수의 글에 나온 옛날 사기방식은 나도 들은 바가 있다. 역삼투압방식으로 정수를 하면 이온을 모두 제거해서 쉽게 말해 증류수를 만든다. (정확한 표현은 이온제거수 deionized water 지만 증류수란 말이 독자들에게 더 친숙할 것으로 판단해서 증류수로 표현합니다) 물속에 전해질이 없으면 전기가 전도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사기꾼들은 수도물은 독성물질이 많아서 여기 불이 켜지지만 자기 정수기로 정수한 물은 독성물질이 없어서 불이 안들어온다 이런 식으로 마케팅을 했는데. 이런 사기꾼 중의 하나가 모 대학 화학과 실험실에 정수기를 팔러 온 것이었다. 그 실험실의 책임자 모 교수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화학자중의 하나로 꼽히는 사람인데 그 앞에서 저런 사기를 쳤겠다. 모 교수, 조용히 학생에게 소금을 가져오라고 해서 물에 소금을 뿌렸다. 당연히 전기전도도가 팍 올라간다. "소금이 독성물질입니까?" 그 사기꾼, 조용히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미국의 수도물은 그냥 마셔도 별로 맛이 텁텁하지 않아서 그냥 마시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나는 그 염소의 맛이 싫어서 조그만 수도꼭지형 정수기를 달아서 정수해서 그냥 마시고 사는데 위 글을 읽으니 과연 이게 더 세균이 많이 번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미국 수도물에서 염소냄새가 덜 난다는 것이, 미국 수도물이 더 깨끗하다는 증거가 될까? 수도물을 믿을 수 없어서 소위 생수를 아예 배달받아서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이 생수는 수도물보다 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믿을 근거는 없다.

"맛의 달인" 60 권 "물 대결" 편에 보면 (124 쪽에서 148 쪽) 일본의 수도물 관리상황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한국의 실정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짐작컨대 일본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제시된 수도물을 만드는 과정은 우선 부유물 (흙, 풀, 모래따위) 을 침전시켜서 가라앉힌다 -> 염소를 넣어 과도하게 녹아있는 금속이온을 침전시킨다 -> 암모니아를 넣어 염소를 제거한다 (전염소처리) -> 알루미늄염을 넣어 부유물 제거 (응집침전 처리) -> 모래로 여과 (급속 여과처리) -> 염소주입 (후염소처리) -> 가정으로 이송.

즉 수도국에서 하는 일은,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소독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지저분한 물을 먹을만한 물로 바꾸는 것이 수도국에서 하는 일이다. 수도물에서 염소냄새가 나는 것은 좀 짜증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염소는 가정의 수도꼭지에서 수도물이 나올 때까지 수도물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장치이다. 수도국에서 나올 때는 깨끗했던 물이 수도관을 타고 흐르는 동안 (특히 한국은 수도관이 노후해서 터진 곳이 많아 오염이 심하다) 오염되었을 때도 수도물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염소를 많이 넣어야 하고, 일본의 경우는 가정의 수도물에서 염소가 일정농도이상 검출되어야 하도록 법규가 되어 있다는데 한국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수도물의 염소야 끓이면 쉽게 제거되니까 큰 문제가 아니지만, 이게 없을 경우는 수도물이 오염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염소가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여하튼 결론은, 수도물은 대단히 엄격한 규정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으니 최소한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 수도물은 왜 냄새가 덜 날까? 증거는 없지만, 아마도 기준이 달라서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나라마다 규정된 기준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처럼 수자원이 부족하고 오염이 심한 나라와,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 처럼 깨끗한 수원을 끌어다가 쓰는 곳이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러니 안전성에 관한 한 한국 수도물이나 미국 수도물이나 다를 것이 없고 다만 다른 것은 맛이다.

그러면 생수는 어떤가?

우선 생수의 병을 자세히 보기로 하자. 여기서는 진로 석수의 병을 구할 수가 없으니 이 동네 생수병을 보면, (혹시 진로 석수병에는 다르게 되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filtered for purity by reverse osmosis and enhanced with minerals for a refreshing taste." 라고 되어 있다. 이 생수는 좀 싼 종류인데 즉 염삼투압방식으로 정수한 후, (이온이 없어서 아무 맛도 없으니) 맛을 내기 위해 미네랄을 첨가했다. 는 것이다. 짐작컨대 사용한 원수가 그냥 담기에는 부적절하니까 정수를 한 것 같다. 알프스 깊은 산골의 생수는 어떨른지. 이런 글을 쓸 줄 알았으면 미리 좀 조사를 해둘 것을 그랬나. 원수가 아주 맑은 물이라면 그냥 담고 살균만 한 경우도 있을 지는 모르지만 대체로는 정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작은 병에 담아서 판매하는 생수의 이야기고, 가정에 배달되는 생수는 4 갤런 이상되는 큰 통을 거꾸로 꽂아서 조금씩 꺼내서 먹는 방식이다. 소위 생수는 염소살균을 하지 않고, 보통 적외선 자외선 살균을 한다 (의료용 주사기나 바늘등은 알파선 살균을 하지만 가정용은 보통 적외선 자외선 살균) 그러므로 아직 두껑이 열리지 않았을 경우는 균이 없지만 일단 두껑이 열리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균이 번식을 한다. 작은 병은 금새 마시니까 그래도 괜찮지만 엄청 큰 통을 받아놓고 일주일씩 마시는 경우, 우선 그 물에 균이 번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고 게다가 생수통을 끼우는 급수대는 생전 청소도 안하니 더 염려스럽다. 실제로 여기저기 보면 급수대에 곰팡이가 낀 경우도 가끔 본다. 곰팡이나 대장균이 어느 정도 있어도 바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으니 가정용 생수는 위험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지만, 최소한 생수가 수도물보다 더 안전하다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는 것이 요점이다. 안전으로 따지자면 수도물이 가장 안전하다. 그러면 냄새는? 냄새가 느껴진다는 것은 그것이 휘발성이라는 이야기이다. 물에는 각종 유기물질들이 미량 녹아있기 마련인데 이것들은 대개 휘발하므로, 수도물을 끓이면 다 날아간다.

그러므로 가장 안전한 물은, 수도물을 끓여서 식힌 물인데 다시 한번 맛의 달인에 따르면, 수도물중의 염소가 각종 오염물질과 반응해서 트라이할로메탄 (가령 클로로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클로로폼은 옛날에는 수술용 마취제로도 썼지만 발암물질이란 것이 밝혀진 이후 쓰이지 않는데 (분해되어 염화수소와 무시무시한 반응성을 가진 카빈이 됨) 이게 수도물에 들어있다면 큰일이다! 그러므로, 물을 끓이되, 끓은 상태에서 그냥 불을 끄지 말고 약한 불에서 약 5 분 정도 더 끓이면 트라이할로메탄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끓었을 때 불을 줄여 약한 불에서 5 분 정도 끓였다가 식힌 수도물이 가장 안전하고 맛있는 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정리하자면, 수도물은 안전한 물이고, 수도물에 녹아있는 휘발물질 및 염소는 그냥 먹더라도 문제가 생길 정도의 농도는 아닌데 그래도 찜찜하므로, 끓였다가 (약한불에 최소 5 분간 둔 후에) 식혀서 마시면 최고의 물이 된다! 는 이야기입니다.

정수기를 꼭 사용하고 싶은 분은, 되도록 자주 정수기 자체를 청소하고 소독하지 않으면, 정수기 자체가 곰팡이의 온상이 되어 더 지저분한 물을 마시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저도 별로 안합니다만. OT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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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룰루랄라 2004/10/15 13:54 # 답글

    저희는 귀찮아도 꼬박꼬박 끓여 먹는데.. 그게 가장 깨끗한 물이라니 다행이네요. ^^
    근데 수도물에 불소함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과학적으로 무해하다는데도 여기저기서 발암물질이라고 난리 치는데 말입니다.
  • 맨땅에헤딩 2004/10/15 14:24 # 삭제 답글

    적외선이 아니라 자외선 살균이겠지요. 그리고 마시는 용도로 파는 물이라면 99.99% 이상 산화수소-_-일텐데 세균이 그리 잘 번식하기 힘들 겁니다. 뭐 세균이라고 해도 원소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없고, 탄소, 인, 질소, 황, 각종 금속이온 따위는 물 속에 없으니까...물론 생수에 저런 것들이 미량 함유되어 있고, 그런 게 쌓이고 쌓여서 생수통 등에 오래 되면 세균이 증식하게 되겠지만, 정기적으로 청소해 주면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보아 안전이란 면에서 수도물이 생수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 자체에는 (제대로 된 수도물이라면) 이론의 여지가 없지요.

    과학자가 보기에 대한민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큰 문제 중 하나가 이 건강 장사꾼/사기꾼들의 문제입니다. 물이나 정수기 장사도 그런 냄새가 다분히 납니다만...조기퇴직 하고 먹고 살겠다는데 마냥 욕할 수만도 없고 -_- 제발 모르는 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거죠 뭐.

  • 기불이 2004/10/15 14:24 # 답글

    그게 말이죠!! 저도 몰라요. 공부를 해야 하는데 게을러서. 이 동네 수돗물은 불소가 포함되어 있답니다. 그런데 이게 여지껏 논쟁중이더군요. 발암물질설은 처음 듣는데.. 보통 논쟁은 유효하다/소용없다 지요.
  • 기불이 2004/10/15 14:29 # 답글

    머릿속에는 자외선이라고 글이 풀려나가는데 손가락은 적외선이라고 타자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OTL 아무래도 이건 김화뷁의 적외선 굴절기의 영향이 아닐른지. 그런데 생수에서 대장균이 번식하는 그래프를 본 기억이 있는데 처음 얼마간은 없다가 (일단 들어오면) 급속히 불어나는 패턴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산화탄소는 물에 녹으니까 이게 탄소 소스로 사용될 가능성은 없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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