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ge (2004) by 기불이

죽음을 부르는 육식의 재앙 을 읽으니까 샤말란 감독의 The Village (2004) 가 생각나는 거야. 왜 생각났는지를 설명하자면 스포일러가 불가피하다.

스포일러 경고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악덕과 범죄가 판을 치는 현대에 질린 사람들이, 과거 선조들의 생활방식을 따르는 고립된 이상향을 만들려고 하는 시도의 좌절과 기이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의 성공을 다룬 이야기다. 평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생각에 사람들이 샤말란이라는 이름에서 반전과 공포만을 기대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만일 샤말란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감상한다면 무척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이상향에 대한 집착과 좌절, 그리고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치열한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 말미에 비로소 밝혀지는 비밀스러운 대화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나는 유펜에서 미국역사를 가르치는 교수요. 내게 아이디어가 있어요...." 악덕과 범죄가 만연하는 현재에 좌절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현대에서 고립되어 새로이 건설할 이상향의 모델을 과거의 미국에서 찾은 것이다. 그래서 The Village 의 모습은 과거 미국의 조그만 마을 바로 그것이다. 아직 전기도 없고 자동차도 없던 시절. 마을의 대소사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교회에서 주최되는 마을회의에서 결정되던 시절... 외부와 격리된 조그만 공동체를 만들어 악덕이 유입될 가능성을 차단한다면, 사랑과 평화만이 가득한 낙원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이 소박한 아이디어는 근본적으로 틀린 것이었다. 왜냐면 악덕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건설한 "어른들" 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젊은이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교육을 통한 통제와 공포를 통한 통제가 그것인데 어릴 적부터 외부와 차단해서 교육시킨 아이들은 다른 식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을회의를 통한 엄격한 생활방식을 잘 따른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호기심은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른들" 은 공포를 통한 통제를 추가로 설치해놓았는데, 숲에는 괴물이 살고 있고 경계선을 넘어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 에서 아버지가 바다에서 죽도록 함으로써 바다에 대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다. 이 공포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종종 민방위훈련까지 실시하게 되는데...

그러나 이 두가지 통제방식은 예기치못한 abnormality 에는 통하지 않는다. 지능이 떨어지는 노아에게는 교육을 통한 통제가 듣지 않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비에게는 공포를 통한 통제가 듣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빛을 보는 아이비에게는 마을이나 숲속이나 어둡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불길은 모든 공포를 불태운다. 괴물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비밀을 알게 된 아이비는 그러나 숲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실재하는 괴물을 마주치게 된다. 방심하고 있는 상태에서 맞닥뜨린 공포는 그 얼마나 무서운 공포인가.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죽을 것만 같은 공포조차 불타오르는 사랑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아이비는 괴물과의 정면승부를 택한다. 과연 가장 두려운 공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 인 것이다. 루시어스가 아이비네 집앞 포치에서 경비를 서는 것은 아이비가 괴물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때문이고 아이비가 숲을 가로지르는 것은 루시어스가 부상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때문이다. 괴물에 대한 공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르는 공포에 비하면 하잘 것 없다.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에 살인미수라는 무시무시한 범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사랑과 질투때문이다. 제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고 엄격한 통제를 한다고 해도, 인간이 인간인 이상 악덕은 내부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악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최대한 관리하는 것 뿐이다.

이 영화에서 "어른들" 은 악덕과 범죄가 판치는 현재에서 벗어나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그것은 우선 불가능할 뿐더러, 근본부터 틀린 일이다. 왜냐면 과거에도 악덕과 범죄는 만연하였기 때문이다. "미래소년 코난" 에 나오는 하이하바는 이상향으로 묘사되지만 그것은 마을규모가 아주 작을 때만 일시적으로 가능할 뿐이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고 잉여생산이 발생하며 소유에 불균형이 생기는 순간 인간의 더러운 본성은 그 고개를 쳐든다. 이것은 백만년전이나 백만년후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대에 발생하는 전염병때문에 과거로 돌아가자고 하는 소리가 나오는 배경에는 "무지" 가 있다. 쉽게 말해서 "무식해서 하는 소리" 라는 것이다. 과거가 좋았다고 하는 느낌은 누구나 갖기 마련인데 그것은 현재는 언제나 괴롭고 미래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일 뿐, 현재의 과거는 과거의 현재였으므로 한순간이라도 좋았던 적이 없었다 혹은 언제나 좋았었다 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추신) 샤말란은 히치코크 감독의 팬으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영화도 히치코크식으로 찍는 경향이 있는데 게다가 한장면씩 깜짝출연하는 것까지 따라하고 있다. 이 영화의 경우 마지막 부근에, 잠깐 의약품 냉장고 유리창에 비친 모습으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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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ooL 2009/04/30 15:49 # 삭제 답글

    전적으로, 깊이 공감합니다.
  • 2009/05/01 00:2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기불이 2009/05/01 00:41 #

    샤말란은 너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데뷔작의 충격이 너무 커서 그렇겠지요. 격렬한 댄스곡으로 데뷔한 가수가 잔잔한 발라드를 제 아무리 잘 불러봤자 팬들은 댄스곡을 원하는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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