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 스토리 1] 나는 어떻게 <깜보>의 제비가 됐나
씨네21 에서 연재하는 박중훈 회고록의 첫편이다. 무척 재미있으므로 일독을 권한다. 읽다보니 요즘 20대 형님....;;; 들은 (저는 19세이므로)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들 잘 모르실 것 같아요.
박중훈씨를 처음 본 것은 (당연한 소리지만) 영화 "깜보" 에서였다. 본인도 강조해놓고 있지만 극중 역할은 날치기 "제비" 역할이었다. 왜 이름이 제비냐면, 궁뎅이에 제비문신이 있어서... 박중훈씨 한창시절 탱글탱글한 궁뎅이를 보고 싶으신 분은 이 영화를 꼭 보시라.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여러가지면에서 모자라겠지만 당시로는 무척 신선하고 잘 만든 영화였다. 지금은 아마 촌스러워서 아무도 그렇게 찍지 않겠지만 옛날에 유행하던 액션장면들이 당시로서는 무척 좋았다. 예를 들어 공연히 종이박스 잔뜩 쌓아놓고 자동차로 들이받고 지나가는 그런 장면... "깜보" 역으로 출연한 장두이씨 연기도 무척 카리스마가 넘쳤고 무엇보다 당시 중3 이던 김혜수씨가 "빨간팬티 나영" 으로 나왔는데 무척 예, 예뻤......;;;; 기억이 꺄물꺄물하다마는 대략 이렇게 된 이야기다. 날치기 제비가 길가던 여자 핸드백을 날치기했는데 이 핸드백에서 나온 시계를 깜보에게 주게 되고, 깜보가 이 시계를 장물애비한테 가져갔단 말이야. 근데 그 물건의 주인이 이미 살해되고 깜보는 졸지에 살인범으로 몰리는 것이다. 결백을 입증할 방법은 그 핸드백의 주인인 여자를 찾아야 하는데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 여자 팬티가 빨간 팬티라는 것 뿐...-_-;;;;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는 김혜수씨 팬티노출이 있습니다! 그것도 중3 시절 찍은 팬티노출입니다!!! 그래서 제비가 지하도 계단을 올라가면서 내려오는 여자들 치마를 전부 들춰 확인하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가 은근히 분위기있고 재미나다. 마지막 장면은 뻔하다면 뻔하지만 그래서 더 울림이 있다. 근데 이게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사연이 기막히다.
"그런데 <깜보> 개봉은 더 우울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뿌듯한 영화였는데, 청소년을 타깃으로 찍은 이 영화를 두고 공연윤리위원회에서 마지막 장면을 걸고넘어지면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내준 거다. 청춘영화로 알고 극장을 찾았다가 그냥 돌아가는 중고생들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당시 공윤 이영희 위원장은 두 가지를 문제 삼았다. 마지막에 장두이씨가 연기한 깜보와 내가 기찻길에서 헤어지는데, 먼저 “기차가 다녀야 할 기찻길에서 사람이 걷고 있기 때문에 잘라야 한다”고 했고, 그 다음은 “두 주인공이 헤어지면서 끝나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전두환 통치 태평성대에 두 사람의 이별은 ‘퇴폐’라는 거였다. 이미 다 찍어온 영화를 가지고 기찻길을 걷지 말게 하고 헤어지지 않게 영화를 끝내라니. 그건 영화를 그냥 없애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위원장님 참 유명한 사람인데(웃음)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영화를 두고 제목에 ‘공포’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된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으로 만든 주인공도 바로 그분이었다. 그렇게 <깜보>는 성인 관람가 영화가 되어 2주 만에 극장에서 간판을 내렸다."
지금 20대 형님들...;;; 은 좋은 시절 만나서 행복한 줄 알아라... 저런 시절도 있었다. 하긴 더 옛날에 영화찍은 사람들은 저 시절도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했을 테지만.
"됴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 영화가 또 걸작이다. 도화살 (桃花煞, 여러 남자 전전할 팔자 또는 여러 남자 잡을 팔자) 을 타고 난 여자 (강수연) 이 여러남자 잡는 이야긴데 (글자그대로 도화와 얽힌 남자들이 죽어나간다) 첫 장면이 무진장 웃기다. 도화가 돌잡이를 하는데 왜 상에다가 실 돈 붓 뭐 이런 거 늘어놓고 돌잡이를 하지 않습니까? 근데 도화살을 타고난 우리의 주인공 도화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뒤뚱뒤뚱 저쪽으로 가더니 구석에 쌓여있던 빨간 고추...;;; 를 잡고 환하게 웃는 거야. ㅎㅎㅎㅎㅎ 돌잡이로 고추를 잡은 여자 바로 그녀가 도화살을 타고난 도화였던 거디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도 걸작이었다. 지금은 일본에 거주하면서 잊을만하면 한번씩 책을 내는 이규형 감독의 히트작인데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촬영도 좋고 무엇보다 색감이 무척 좋았던 영화였다. 보물섬이 죽고 해떨어지는 바닷가(던가?) 를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뼛가루를 뿌리러 갔던가?) 그 붉은 해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강수연씨의 연기도 일품이었는데 미미란 여자가 예쁘고 머리비었지만 다정하고 영악하며 때론 무자비하고 그런 복잡한 캐릭터인데 무척 잘 표현했다.
박중훈씨의 대표작은 한둘이 아니지만 나는 "우묵배미의 사랑" 을 최고 걸작으로 꼽고 싶다. 비루한 인생의 비루하지만 아름다운, 말하자면 들풀같은 사랑이야긴데 최명길씨와 여관방에 갔다가 최명길씨가 사라지는 바람에 빤스만 입고 혼자 방에서 서성이는 장면이 있다. 장소는 여관방이요 때는 새벽녘이며 입은 것은 빤스라.... 다들 아시는 바대로 텐트를 치고 있는데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 CG 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아마 뭘 넣고 찍은 것 같은데 자존심때문인지 너무 큰 걸 넣었다는 생각이...
그 다음 걸작이라면 역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를 들 수 있겠다. 참 어울리는 역할을 참으로 어울리게 잘 소화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런 대목이 있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957년생인 이규형 감독이 나보다 9살 많았는데 얘기를 해보니 딱히 나이 차도 느껴지지 않고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나를 캐스팅하겠다고 하면서, 요즘 한국영화에 너무 웃음이 없다며 유머가 넘치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흔쾌히 동의했고, 개런티로 무려 500만원을 받았다. 그땐 임성민 선배 같은 분도 500만원을 받고, 안성기 선배 정도가 최고로 1천만원을 받던 때였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개런티 받은 날 강우석, 강제규 형을 불러 딱 셋이서 삼겹살을 먹었다. 당시 두 사람은 실제로 삼겹살 먹을 돈이 없던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2차로 압구정에 있는 스페인하우스라는 가라오케까지 데려가서 쐈다. 그러면서 우리 꼭 이 다음에 흥행감독, 흥행배우가 되자고 다짐했다. (웃음)"
강우석 강제규도 삼겹살을 사먹을 돈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 힘들고 배고픈 우리 청춘들이여. 강우석 강제규, 그들도 배고픈 때가 있었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기 바란다. 오늘 힘들고 배고프겠지만 열심히 살아라! 시간이 흐르면 그대들도 흥행감독, 흥행배우가 될 수 있을테니까.
예전에 박중훈씨가 자기 외모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꽃미남과는 아니잖아요? 코는 펑퍼짐하고... 근데 나는 박중훈씨를 보면 불란서 배우 장 폴 벨몽도 Jean-Paul Belmondo 생각이 난다. 생긴 것도 비슷하지만 배우로서의 역량으로 보아서도 박중훈씨는 장 폴 벨몽도에 비견하여 별로 꿀릴 것이 없는 대배우라는 생각.
씨네21 에서 연재하는 박중훈 회고록의 첫편이다. 무척 재미있으므로 일독을 권한다. 읽다보니 요즘 20대 형님....;;; 들은 (저는 19세이므로)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들 잘 모르실 것 같아요.
박중훈씨를 처음 본 것은 (당연한 소리지만) 영화 "깜보" 에서였다. 본인도 강조해놓고 있지만 극중 역할은 날치기 "제비" 역할이었다. 왜 이름이 제비냐면, 궁뎅이에 제비문신이 있어서... 박중훈씨 한창시절 탱글탱글한 궁뎅이를 보고 싶으신 분은 이 영화를 꼭 보시라.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여러가지면에서 모자라겠지만 당시로는 무척 신선하고 잘 만든 영화였다. 지금은 아마 촌스러워서 아무도 그렇게 찍지 않겠지만 옛날에 유행하던 액션장면들이 당시로서는 무척 좋았다. 예를 들어 공연히 종이박스 잔뜩 쌓아놓고 자동차로 들이받고 지나가는 그런 장면... "깜보" 역으로 출연한 장두이씨 연기도 무척 카리스마가 넘쳤고 무엇보다 당시 중3 이던 김혜수씨가 "빨간팬티 나영" 으로 나왔는데 무척 예, 예뻤......;;;; 기억이 꺄물꺄물하다마는 대략 이렇게 된 이야기다. 날치기 제비가 길가던 여자 핸드백을 날치기했는데 이 핸드백에서 나온 시계를 깜보에게 주게 되고, 깜보가 이 시계를 장물애비한테 가져갔단 말이야. 근데 그 물건의 주인이 이미 살해되고 깜보는 졸지에 살인범으로 몰리는 것이다. 결백을 입증할 방법은 그 핸드백의 주인인 여자를 찾아야 하는데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 여자 팬티가 빨간 팬티라는 것 뿐...-_-;;;;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는 김혜수씨 팬티노출이 있습니다! 그것도 중3 시절 찍은 팬티노출입니다!!! 그래서 제비가 지하도 계단을 올라가면서 내려오는 여자들 치마를 전부 들춰 확인하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가 은근히 분위기있고 재미나다. 마지막 장면은 뻔하다면 뻔하지만 그래서 더 울림이 있다. 근데 이게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사연이 기막히다.
"그런데 <깜보> 개봉은 더 우울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뿌듯한 영화였는데, 청소년을 타깃으로 찍은 이 영화를 두고 공연윤리위원회에서 마지막 장면을 걸고넘어지면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내준 거다. 청춘영화로 알고 극장을 찾았다가 그냥 돌아가는 중고생들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당시 공윤 이영희 위원장은 두 가지를 문제 삼았다. 마지막에 장두이씨가 연기한 깜보와 내가 기찻길에서 헤어지는데, 먼저 “기차가 다녀야 할 기찻길에서 사람이 걷고 있기 때문에 잘라야 한다”고 했고, 그 다음은 “두 주인공이 헤어지면서 끝나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전두환 통치 태평성대에 두 사람의 이별은 ‘퇴폐’라는 거였다. 이미 다 찍어온 영화를 가지고 기찻길을 걷지 말게 하고 헤어지지 않게 영화를 끝내라니. 그건 영화를 그냥 없애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위원장님 참 유명한 사람인데(웃음)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영화를 두고 제목에 ‘공포’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된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으로 만든 주인공도 바로 그분이었다. 그렇게 <깜보>는 성인 관람가 영화가 되어 2주 만에 극장에서 간판을 내렸다."
지금 20대 형님들...;;; 은 좋은 시절 만나서 행복한 줄 알아라... 저런 시절도 있었다. 하긴 더 옛날에 영화찍은 사람들은 저 시절도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했을 테지만.
"됴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 영화가 또 걸작이다. 도화살 (桃花煞, 여러 남자 전전할 팔자 또는 여러 남자 잡을 팔자) 을 타고 난 여자 (강수연) 이 여러남자 잡는 이야긴데 (글자그대로 도화와 얽힌 남자들이 죽어나간다) 첫 장면이 무진장 웃기다. 도화가 돌잡이를 하는데 왜 상에다가 실 돈 붓 뭐 이런 거 늘어놓고 돌잡이를 하지 않습니까? 근데 도화살을 타고난 우리의 주인공 도화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뒤뚱뒤뚱 저쪽으로 가더니 구석에 쌓여있던 빨간 고추...;;; 를 잡고 환하게 웃는 거야. ㅎㅎㅎㅎㅎ 돌잡이로 고추를 잡은 여자 바로 그녀가 도화살을 타고난 도화였던 거디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도 걸작이었다. 지금은 일본에 거주하면서 잊을만하면 한번씩 책을 내는 이규형 감독의 히트작인데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촬영도 좋고 무엇보다 색감이 무척 좋았던 영화였다. 보물섬이 죽고 해떨어지는 바닷가(던가?) 를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뼛가루를 뿌리러 갔던가?) 그 붉은 해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강수연씨의 연기도 일품이었는데 미미란 여자가 예쁘고 머리비었지만 다정하고 영악하며 때론 무자비하고 그런 복잡한 캐릭터인데 무척 잘 표현했다.
박중훈씨의 대표작은 한둘이 아니지만 나는 "우묵배미의 사랑" 을 최고 걸작으로 꼽고 싶다. 비루한 인생의 비루하지만 아름다운, 말하자면 들풀같은 사랑이야긴데 최명길씨와 여관방에 갔다가 최명길씨가 사라지는 바람에 빤스만 입고 혼자 방에서 서성이는 장면이 있다. 장소는 여관방이요 때는 새벽녘이며 입은 것은 빤스라.... 다들 아시는 바대로 텐트를 치고 있는데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 CG 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아마 뭘 넣고 찍은 것 같은데 자존심때문인지 너무 큰 걸 넣었다는 생각이...
그 다음 걸작이라면 역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를 들 수 있겠다. 참 어울리는 역할을 참으로 어울리게 잘 소화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런 대목이 있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957년생인 이규형 감독이 나보다 9살 많았는데 얘기를 해보니 딱히 나이 차도 느껴지지 않고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나를 캐스팅하겠다고 하면서, 요즘 한국영화에 너무 웃음이 없다며 유머가 넘치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흔쾌히 동의했고, 개런티로 무려 500만원을 받았다. 그땐 임성민 선배 같은 분도 500만원을 받고, 안성기 선배 정도가 최고로 1천만원을 받던 때였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개런티 받은 날 강우석, 강제규 형을 불러 딱 셋이서 삼겹살을 먹었다. 당시 두 사람은 실제로 삼겹살 먹을 돈이 없던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2차로 압구정에 있는 스페인하우스라는 가라오케까지 데려가서 쐈다. 그러면서 우리 꼭 이 다음에 흥행감독, 흥행배우가 되자고 다짐했다. (웃음)"
강우석 강제규도 삼겹살을 사먹을 돈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 힘들고 배고픈 우리 청춘들이여. 강우석 강제규, 그들도 배고픈 때가 있었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기 바란다. 오늘 힘들고 배고프겠지만 열심히 살아라! 시간이 흐르면 그대들도 흥행감독, 흥행배우가 될 수 있을테니까.
예전에 박중훈씨가 자기 외모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꽃미남과는 아니잖아요? 코는 펑퍼짐하고... 근데 나는 박중훈씨를 보면 불란서 배우 장 폴 벨몽도 Jean-Paul Belmondo 생각이 난다. 생긴 것도 비슷하지만 배우로서의 역량으로 보아서도 박중훈씨는 장 폴 벨몽도에 비견하여 별로 꿀릴 것이 없는 대배우라는 생각.










덧글
imago 2009/02/25 11:43 # 답글
청춘스케치 저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고래사냥과 함께 그 당시 최고의 청춘영화가 아니었나 싶네요. 제가 기억하는 박중훈 최고의 영화는 '게임의 법칙'입니다. 박중훈이 '우리 싸이판 가는거다'라고 말하던 마지막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기불이 2009/02/25 14:37 #
아 맞아요. 게임의 법칙도 정말 끝내줬죠. 이경영씨 연기도 좋았고.
BigTrain 2009/02/25 12:56 # 답글
저 때 공윤위원장이 누군가 했는데, 그 악명높은 "이영희"군요. 90년대던가, 조선일보와 결탁해서 "또 하나의 만엽집"과 "노래하는 역사"를 펴냈던...
BigTrain 2009/02/25 12:59 #
그러고 보니 이영희의 조선일보 출판물들은 주제와는 별 상관없이 농도짙은 에로 묘사와 일러스트로 유명했는데... 10여년 전에는 저렇게 칼질을 하기도 했었군요. 이 사람도 인간의 탈을 쓴 비인간 중 하나인가 봅니다.
위장효과 2009/02/25 16:12 #
아...그 "노래하는 역사"로 수많은 사람 낚았던 낚시꾼말입니까? 말씀대로 자기가 칼질해댄 작품들보다도 더 쓸데없는데서 에로묘사해댔는데 남의 작품은 그렇게 난도질이라...BigTrain님 평이 적절하네요.
2009/02/25 13:2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기불이 2009/02/25 14:38 #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준님 2009/02/25 20:24 # 답글
1. 사실 지금 조선일보나 5공때 경제관료들도 5공화국 참가 전력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욕을 푸지게 먹고 있습니다만 이영희의 경우는 아주 아주 5공 참여 죄질이 불량한 -아마 5공 부역가지고 전범재판했으면 중형은 분명한- 타입입니다만 "반일"+"환빠" (사실 이건 5공 청산 운동때문에 위기에 몰리자 선택한 길입니다만) 기질때문에 칭송을 받은 셈이지요. 5공화국이 정식출범 되기도 전에 "국보위"에서부터 활약했고 나중에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까지 역임합니다2. 가위질때문에 "가위 든 마녀"라는 칭호도 얻었지요. 뭐 에로 이런건 두번째고 일본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모든 영화, 아텐보로 감독의 "간디", 찰리 채플린의 모든 영화가 대학가 비짜 영화로 돌게 된게 이영희 위원장의 공로가 큽니다.
3. 이 사람은 영문과 교수이기 때문에 일어에 능통하지 않고 언어학적 지식도 빵점입니다만 만엽집 논제로 꽤 끌었지요. 최고 압박은 "연개소문은 죽지 않고 일본에 건너가 천황이 되었고 연개소문의 생물학적 아들인 김법민-문무왕-도 죽지 않고 일본에 건너가 다음 천황이 되었고 고구려가 망한건 연개소문이 아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는 이론을 소설이 아니라 정말로 믿고 진지한 연구를 한겁니다. 최근에는 김홍도는 샤라쿠였다라는 연구를 했는데 거의 듣보잡이 되었지요(사실 에도 연간에 외국인 감시-정확하게는 기독교 탄압의 여파지만- 를 안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기 어렵지요)
이준님 2009/02/25 20:28 # 답글
1. 박중훈씨의 경우는 80년대 초반에 잠깐 피다 진 많은 청춘스타들의 길을 걷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습니다. 그만큼 연기력이 따라왔다는 거지요. 하지만 안성기와 같은 국민배우로는 좀 부족했지요. "라디오 스타"에서 박중훈-안성기를 캐스팅한건 배우들의 실제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생각이 듭니다.하기야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지(개인적으로는 무진장 유치하게 봤습니다만)"에서 이규형이 적극 밀어준 "보물섬" 김세준 같은 경우도 나중에는 그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만 봐도 알수 있지요
2. 우묵배미의 사랑에서만큼의 들풀 연기로는 문성근이 운동권 수배자로 탄광에 숨어 있고 지역건달 박중훈과 작부 심혜진과 얽히는 모 영화도 있습니다. 문성근이 영화쪽에서 초기라서 그런것도 있지만 사실상 주인공인 문성근을 충분히 누를만큼의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지요
우기 2009/02/27 06:26 # 답글
정말 좋아하는 배우인데 요즘 토크쇼에서는 안타까울 뿐입니다.한동안 슬럼프에 빠져있다가, 제 옷을 입은 듯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던 '인정사정 볼 것없다'는 정말 좋았습니다.
2009/02/27 21:5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