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작가의 자세. by 기불이

책 태우기는 바보짓.

내가 생각할 적에 자기 책을 태우면 아마추어작가는 무진장 마음 상하고 프로작가는 무진장 기분좋고 그럴 것 같다. 왜냐면 내 생각에 프로작가에게 책이란 상품이기 때문이다. 만일 책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 뭔가 택도없는 비난을 한다거나 왜곡을 한다거나 하면 무척 기분나쁠 것 같은데 책 자체야 뭐 그 내용을 담는 포장에 불과한 것이고 게다가 일용할 양식을 벌어주는 밥벌이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에게 책의 내용은 자기 자식같은 것이지만 "책 그 자체" 는 상품일 뿐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기 책의 내용에 대해 잘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독자에 대해서 작가는 무척 고마와한다. 제대로 된 작가라면 자기가 잡아내지 못한 오류를 잡아내고 알려주는 독자도 고마와한다.어떤 작가는 자기 책의 오탈자를 모두 집어내는 독자라면 밤새도록 술이라도 사주겠다고 했었다. 자기 책을 그만큼 꼼꼼이 읽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자기 책을 한권 사서 주변 사람들과 모두 돌려봤어요, 스캔해서 백만명에게 읽혔어요, 이런 사람을 작가가 고마와 하겠느냔 말이야. 웹에 연재하는 아마추어 작가라면 "퍼가염~" 소리가 많을수록 고마와할 지도 모른다. 어차피 책을 팔아서 먹고살 생각은 없고 다만 많은 사람이 읽어주면 고마울테니까. 그러나 프로작가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프로작가는 욕을 쫌 먹어도 책을 팔아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 작품세계를 인정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돈내고 사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만화가한테 가서 스캔본으로 다 봤는데 당신 정말 대단한 작가에요~! 하고 말해봐라. 아유 고맙습니다, 할 것 같아? 최근에 이글루스의 아이돌 마스코트 채다인님이 책을 냈는데, 채다인님 블로그에 가서 "그 책 서점에서 서서 읽어봤는데 무척 좋았어요~." 하고 덧글을 달면 채다인님이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할까? 뭐 면전에서야 그렇게 말할 지 모르지만 출판사에 전화해서 "그거 비닐래핑해서 팔면 안되나여?" 하지 않을랑가.

게다가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런 면도 있다. 가령 무슨 프로그램이 한심하다고 욕을 많이 먹든 말든 시청률이 높으면 작가와 PD 는 상관하지 않는다. 상관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욕을 먹을수록 시청률이 높아지는데. 책을 태우면 일단 판매부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고, 태운다느니 하는 소동을 피우면 그것만으로도 그 책이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데 작가로서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 내심 고마울 것이다.

자기 책을 태운다고 상처입고 이런 나이브한 작가들은 아마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쪼까 어려울 것이다. 이런 분들은 프로로 전향하지 마시고 그냥 취미생활로만 활동하는 게 본인을 위해 바람직할 것이다. 넘의 돈 먹기란 보기보다 쉽지 않다.

내가 프로작가라면 내 책을 태운 분들께 내 책을 1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쿠폰을 우송해줄 것 같다. 더 사서 더 태우라고.

그리고 책이란 것은 사실 태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태우기 쉽도록 디자인된 분서용 세트를 개발해서 파는 것도 생각해볼만하다. 즉 잘 타는 종이를 사용해서 만든 분서용 버전을 따로 개발하고 안전하게 태울 수 있도록 구멍뚫린 금속상자, 기름, 길다란 성냥, 소형소화기까지 포함한 특별 분서용 세트를 만들어서 파는 거지. 이런 게 프로의 자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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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8/11/20 04:0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살란티어 2008/12/05 00:55 # 답글

    지나가는 길에 그냥 줄여서 써봅니다. 블로거님께서 말하는 작가들은 플롯과 구조가 단순하여 한번 줄거리를 소비하면 끝인 책들 혹은 성공과 주식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강박에 빠진 대중들을 노린책들에 한정된것 같습니다. 그들과 다른 작가들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자부심이 지대합니다.(그렇다고 비판을 싫어하는건 아닙니다) 이러한 경향의 작가들은 자신이 쓰는 글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독자의 수준에 맡기죠. 뭐 그래서 그들은 프로 작가이면서 동시에 취미생활로 창작을 합니다만은.... 근처의 포스팅을보면 블로그에 있는 음원저작권논쟁에 관한 글이 있던데 블로그에 있는 각종 소설과 시들의 무단도용을 작가들은 '법적 행정절차'를 요구하지 않고 '용인'하는 점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 기불이 2008/12/05 04:51 #

    작가들이 창작물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 창작물에 대한 자부심과 창작물이 판매되는 형태에 불과한 책이라는 이름의 종이묶음에 대한 애정은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죠.
  • 살란티어 2008/12/05 23:58 # 답글

    잘못읽었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견해로는 이미 문단의 작가들은 책을 팔아서 먹고살 생각이 없고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가장 잘나가는 '프로 시인'인 김경수는 시집 한 권당 판매부수가 만부이기에 만부시인(양판소 따위가 만부를 쉽게찍어내지만 시집에서 만부는 위대한겁니다...)으로 불립니다. 문단에서도 극찬을 받는 상당히 성공한 케이스죠. 하지만 시집을 1권을 쓰기위하여 드는 시간은 평균 1~2년 인데 6000원짜리 책의 인세로은 88만원 세대보다 연봉이 적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합니다. 저는 일개의 독자일 뿐이지만, 이러한 현대에서 문학하고자한다는 사람들은 예술가처럼 자신의 세계의 완성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로인하여 독자가 책좀 빌려봣다고하여 몇푼(책한권 구매시 작가에게 들어가는 평균인세는 천원정도입니다)의 이익에 따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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