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황석영 선생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구에서 문인들 모임이 한번 있었지. 스무나뭇이 모였는데, 말석에 어떤 ‘지방 문인’이 하나 끼여들어 앉더라구. 그의 맞은편에는 김지하씨가 앉았고. 그 ‘지방 문인’이 김지하씨한테 이러는 거야. ‘김부식은 명문장이고, 이완용은 명필이다!’ 듣다못해 내가 냅다 소릴 질렀지. 아니 그럼 동학농민혁명 때 삼식이가 일본군 총에 맞아 죽으면서 ‘이완용은 명필이다!’하고 죽냐? ‘이완용은 매국노다!’하고 죽지! 이완용이 명필이란 얘긴 뭐냐? 문학의 사회성을 떠나서 순수 문학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얘기거든. 뻔한 얘기지. 김부식이고 이완용이고 다 반동 아냐? 사회적으로 볼 때 그런 반동도 글씨 잘 쓰고 글 잘 지으면 다 훌륭한 예술가 아니냐는 거지.”
그때 그 말석에 앉았던 ‘지방 문인’은 지금은 제법 유명세를 타면서 수구적 논리를 줄기차게 펴고 있는 ‘어떤 문인’이다."
저 '지방 문인' 또는 '어떤 문인' 은 다들 아시다시피 이문열씨다. 황석영은 선생이고 이문열은 씨 인 것을 보면 대략 내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 짐작하실 수 있겠다.
옛날에 소설을 한번 써볼까! 하고 망상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타고난 글재주가 시원찮아서 글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자문을 구했는데 "이문열 단편집을 사서 그대로 베껴써봐라." 라는 자문을 받았다. 이문열의 문장이 좋은 것은 알고 있지만 왜 하필이면 이문열인가, 하고 물었더니 "이문열이 소설공부하기에는 제일 좋다." 라는 대답을 받았다. 어째서 그러냐고 재차 물었더니 "이문열은 한번 간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 라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단편집 모두 다섯권인가를 사서 열심히 읽었는데 과연 그런 것이었다. 의식을 하고 읽었더니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모두가 다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문열은 그 많은 단편을 쓰면서 똑같은 스타일로 쓰지 않고 계속 다른 스타일을 실험하고 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이문열씨에 대한 인상이 무척 많이 바뀌었다. 정치적 견해야 나와 완전히 다르지만 적어도 그가 훌륭하고 게다가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한 예술가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오는 작품마다 재미있지만 항상 비슷비슷한, 이를테면 장르소설가로 분류될만한 작가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작가들과 이문열은 다르다.
그러나 황석영 선생의 이야기도 새겨들을만하다. 경찰에 쫓기면서 틈틈히 쓰는, 또는 공장 기름밥을 먹어가며 야근을 마치고 쓰는, 또는 감방에 갇혀서 지필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은 시가, 좋은 환경에서 그윽한 사색을 통해 생산된 시와 같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 반동도 훌륭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고 실제로는 환경이 좋은 만큼 더 훌륭한 예술을 창조해낼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입장 또는 행적 (가령 '친일파') 와 그 예술적 업적은 관련이 없다고만 하면 무척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평가때문에 그 예술적 성취에 대한 평가마저 왜곡되는 것을 보면 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에또 소설공부는 어떻게 되었느냐면 한편을 베껴쓰는 도중에 '한편 베끼기에도 손목이 아픈데 정말로 다섯권을 다 베껴야 한단 말인가?' 하는 마음속 깊숙이에서 울려나오는 무의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 그만두고 말았다.
"“대구에서 문인들 모임이 한번 있었지. 스무나뭇이 모였는데, 말석에 어떤 ‘지방 문인’이 하나 끼여들어 앉더라구. 그의 맞은편에는 김지하씨가 앉았고. 그 ‘지방 문인’이 김지하씨한테 이러는 거야. ‘김부식은 명문장이고, 이완용은 명필이다!’ 듣다못해 내가 냅다 소릴 질렀지. 아니 그럼 동학농민혁명 때 삼식이가 일본군 총에 맞아 죽으면서 ‘이완용은 명필이다!’하고 죽냐? ‘이완용은 매국노다!’하고 죽지! 이완용이 명필이란 얘긴 뭐냐? 문학의 사회성을 떠나서 순수 문학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얘기거든. 뻔한 얘기지. 김부식이고 이완용이고 다 반동 아냐? 사회적으로 볼 때 그런 반동도 글씨 잘 쓰고 글 잘 지으면 다 훌륭한 예술가 아니냐는 거지.”
그때 그 말석에 앉았던 ‘지방 문인’은 지금은 제법 유명세를 타면서 수구적 논리를 줄기차게 펴고 있는 ‘어떤 문인’이다."
저 '지방 문인' 또는 '어떤 문인' 은 다들 아시다시피 이문열씨다. 황석영은 선생이고 이문열은 씨 인 것을 보면 대략 내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 짐작하실 수 있겠다.
옛날에 소설을 한번 써볼까! 하고 망상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타고난 글재주가 시원찮아서 글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자문을 구했는데 "이문열 단편집을 사서 그대로 베껴써봐라." 라는 자문을 받았다. 이문열의 문장이 좋은 것은 알고 있지만 왜 하필이면 이문열인가, 하고 물었더니 "이문열이 소설공부하기에는 제일 좋다." 라는 대답을 받았다. 어째서 그러냐고 재차 물었더니 "이문열은 한번 간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 라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단편집 모두 다섯권인가를 사서 열심히 읽었는데 과연 그런 것이었다. 의식을 하고 읽었더니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모두가 다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문열은 그 많은 단편을 쓰면서 똑같은 스타일로 쓰지 않고 계속 다른 스타일을 실험하고 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이문열씨에 대한 인상이 무척 많이 바뀌었다. 정치적 견해야 나와 완전히 다르지만 적어도 그가 훌륭하고 게다가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한 예술가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오는 작품마다 재미있지만 항상 비슷비슷한, 이를테면 장르소설가로 분류될만한 작가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작가들과 이문열은 다르다.
그러나 황석영 선생의 이야기도 새겨들을만하다. 경찰에 쫓기면서 틈틈히 쓰는, 또는 공장 기름밥을 먹어가며 야근을 마치고 쓰는, 또는 감방에 갇혀서 지필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은 시가, 좋은 환경에서 그윽한 사색을 통해 생산된 시와 같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 반동도 훌륭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고 실제로는 환경이 좋은 만큼 더 훌륭한 예술을 창조해낼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입장 또는 행적 (가령 '친일파') 와 그 예술적 업적은 관련이 없다고만 하면 무척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평가때문에 그 예술적 성취에 대한 평가마저 왜곡되는 것을 보면 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에또 소설공부는 어떻게 되었느냐면 한편을 베껴쓰는 도중에 '한편 베끼기에도 손목이 아픈데 정말로 다섯권을 다 베껴야 한단 말인가?' 하는 마음속 깊숙이에서 울려나오는 무의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 그만두고 말았다.









덧글
Charlie 2008/06/19 05:35 # 답글
문학을 하는 사람은 문학으로, 방송을 하는 사람은 방송으로, 미술을 하는 사람은 미술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인간적인 면도 중요하긴 하지요...)
하지만...
참 살만 루시디는 요즘 잘 살만 하데요? ;)
기불이 2008/06/19 05:37 #
많이 듣던 이름인데 그게 루구시디? 하고 잠깐 생각을....
로리 2008/06/19 05:40 # 답글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죠. 작품 자체는 그 작품 자체로 봐야할지 모르지만 그 작품이 나온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사색도 중요하니까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시가 시 적으로는 좋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시대적 상황이나 모습에 따라서 얼마든지 평가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시나 문학 작품 역시나 그 사회와 떨어 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기불이 2008/06/19 05:51 #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시가 시 적으로는 좋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의 근거를 부탁합니다.한 편의 작품은 그것이 어떤 문맥이나 상황 속에서 독자들과 만나게 되는 냐에 따라 그 해석 내용은 물론 울림의 폭이나 깊이가 다르게 마련이다. 김지하의 작품 <타는 목마름으로>는 특히나 당대의 시대적 문맥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탄생된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와 시대적.사회적 문맥이 달라진 시점에서 감상을 할 때에는 그만큼의 절실성이나 시적 울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훌륭한 작품은 시공을 초월하여 생명력을 지니며 독자들에게 파고들 수 있는 것이거니와, 김지하의 이 작품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류의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출처 : 정효구, '금지된 이름 : 민주주의'에서)
이런 평가까지 올려야 하나요?
고등학교때 학교에서 열심히 토론 수업 했던 생각이... ^^;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그 시적 한계가 분명합니다. 시의 주제를 너무나 분명히 제시했기 때문에 그 의의를 이루게 될 경우에는 그 감동의 영역은 사라지게 되어 있죠. 같은 저항시라고 할 지라도 윤동주의 시나 한용운의 시처럼 목적의 대상을 우루어야 할 무엇이나 바라는 것으로 나타낸 것과 다르다는 것이죠. 님의 침묵에서 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고, 당시 일본에게 침탈당한 조선으로도 볼 수 있고, 내가 처한 상황이나 그 현실에 따라서 그것에 몰입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서 김지하의 시는 과연 민주주의가 이루어 진 이후에는 그 감동이나 목적은 희미해지는 법이니까요.
기불이 2008/06/19 07:23 #
민주주의란 게 이루어질 수 있는 목표입니까? 게다가 "타는 목마름으로" 가 보편성이 다소 부족하다라든가,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과 겪은 사람의 감동의 크기가 다르다라고 하면 그렇다고 하겠는데 "시의 주제를 너무나 분명히 제시했기 때문에 그 의의를 이루게 될 경우에는 그 감동의 영역은 사라지게 되어 있죠." 라는 건 쫌....
로리 2008/06/19 07:29 #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생각하면 딱 이겠군요.일제의 저항시지만, 그 날이 오면을 읽었을 때 독재타도를 생각할 수도 있죠.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분명한 목표를 제시해버린 나머지 그 감동이나 감상적 이입은 한계가 분명하니까요. 지금 이야기가 딱 10년전 고등학교 때 토론 수업이랑 비슷하게 전개되네요 ^^;
하늘빛마야 2008/06/19 07:33 #
로리 님//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제한되어있거나 느끼는 감동이 과거에 비해 덜할 수 있다는 점이 시의 예술성을 깎아먹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럼 반대로 시대를 앞서나가서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작품은 없던 예술성이 갑자기 생겨난 것인가요? 예술에 대한 평가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있는 한 이 시는 충분히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살아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용하신 구절에서부터 그리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류의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기불이 2008/06/19 07:33 #
한계가 있다는 것이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시가 시 적으로는 좋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라는 가치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좋은 시" 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보편성이 있는 시도 있고 보편성이 다소 부족한 시도 있는데, 보편성이 부족한 시는 좋지 않은 시 입니까?
로리 2008/06/19 07:41 #
시는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지고 누구에게나 그 전달력을 지녀야 한다고 배웠고, 저 역시나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고전이 시대를 넘어서서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법이니까요.
기불이 2008/06/19 07:48 #
브레히트는 이런 시를 썼는데요."6월17일 봉기 뒤에/ 작가동맹 서기는/ 스탈린가에 전단을 배포케 했다/ 거기 씌어 있기를/ '인민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어버렸으니/ 이것은 오직 두 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나 /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체하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이 시는 주제가 분명한 것은 물론이고 날짜까지 딱 나와있는데 이런 시는 별로 좋은 시가 아니겠습니다.
기불이 2008/06/19 07:53 #
영화나 소설중에도 보편적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다소 매니악하고 난해하거나 심지어 상당히 괴팍한 취향의 작품들도 있는데요, 님의 논리를 따르면, 이런 작품들은 좋은 작품이 아니겠습니다.
로리 2008/06/19 07:57 #
저 역시나 록키호러 픽쳐쇼 같은 신기 괴기한 영화를 좋아합니다만, 남에게 추천하는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기반으로 해서 누구나 다 재미있고 좋게 보는 영화를 추천하죠.이 전의 디워 논쟁 때도 이야기 했지만,
http://roricon.egloos.com/1639404
영화나 예술에 대한 제 태도는 이걸로 요약 됩니다.
기불이 2008/06/19 08:05 #
아니죠. 여기서 포인트는 '록키호러픽쳐쇼' 가 '영화적으로는 좋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라고 할 수 있냐는 겁니다.
로리 2008/06/19 08:11 #
극장에서 소화전으로 마구 물을 뿌리는 것이 과연 영화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불이 2008/06/19 08:25 #
극장에서 물을 뿌리든 말든 '록키호러픽쳐쇼' 가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화적으로 좋지 않다" 라고 해도 되는 거냐는 것을 묻고 있습니다.
로리 2008/06/19 08:04 # 답글
기불이님 말처럼 이라면 디워도 얼마든지 좋은 영화가 될 수 있겠군요.
기불이 2008/06/19 08:06 #
아니죠. 디워는 그 시절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보편성' 은 획득했지만 (아리랑 눈물 좔좔 디워 8백만) 영화적으로 좋은 영화는 아니죠. 정확하게 잘못된 예를 고르셨습니다.
로리 2008/06/19 08:12 #
디워를 옹호한 측은 디워의 특성을 괴수물이라는 특별한 장르적인 이유를 들어서 영화가 잘 못되었다고 말한 평론가들에 대해서 방어를 했죠.
기불이 2008/06/19 08:22 #
디워는 괴수물치고도 엉망이었다는 것이 제정신 박힌 사람들의 평가였다고 봅니다만.
루스 2008/06/21 15:43 # 삭제
디워는 "너무 엉망이어서 한 번 볼만한 영화" 반열에는 오를만하다고 봅니다만.
구들장군 2008/06/19 10:27 # 삭제 답글
여기저기 떠돌다 흘러들게 되었습니다. 댓글 남기고 가도 될런지요.저도 황석영선생 소설 참 좋아하는데..이완용이 명필이란 건, 그 사람이 민족반역자인 것과 상관없지 않을까 싶은데, 명필이니 친일좀 봐주자는 주장을 누가 했다면 몰라도, 좀 오바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김부식은 반동으로 보긴 힘들지 않을까싶군요.
묘청의 난 진압한 것이야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고,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서경파와 맞선 것은 당시 묘청일파의 행각이 너무 황당무계해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무슨 선인에게 배운 병법이 있으니 싸우면 다 이긴다는 주장을 하질 않나-그런게 정말 있었으면 개경으로 진격했지 서경에서 농성할 일도 없었겠죠-, 왕 지나가는 강에 기름떡 가라앉혔다가 기름이 물에 떠다녀서 색깔나는 것을 상서로운 징조라고 떠들다 걸리질 않나....
금나라에 두세번인가 사신으로 갔던 적이 있어서, 금과 붙으면 고려가 진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던 김부식 입장에서 그들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했을 겁니다. 고려도경에 보면, 서긍은 개경의 방어가 허술해서 전쟁이 나면 지켜낼 수 없을 거란 평가를 했다더군요. 찾아보니 묘청의 난은 1135년, 고려도경은 1123년에 쓰여졌네요. 이런 사정은 고려인들이 더 잘 알았을 겁니다.
이전에 요와의 전쟁에서도, 침공을 물리치긴 했어도 결국 요에게 칭신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계속 칭제하다가 처음으로 자주성에 위기가 온 상황도 아닌데, 질 가능성이 높은 전쟁을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묘청의 주장대로 국정이 운영 되었다면, 병자호란에 맞먹는 일이 고려시대에도 한번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요즘들어 황석영 선생 자전적 소설 보다가, 만약 제가 황선생의 주변에 있었다면 싫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하는데..저 발언은 좀 그렇네요.
구들장군 2008/06/19 13:10 # 삭제
다시보니 김지하/이문열/황석영 선생의 말 앞뒤에 다른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제가 그 맥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떠들었네요.
황석영선생께서 오바하신 것 같다는 말, 발언이 좀 그렇다는 말은 취소합니다.
Proto 2008/06/19 11:36 # 삭제 답글
문학을 하는 사람을 문학으로만 평가한다면 '명필'이고 '명문장'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닐거에요.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김부식이나 이완용이 '훌륭한 예술가'는 아니겠죠.
새매 2008/06/19 13:08 # 삭제 답글
글쎄요... 예술가 본인을 작품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상 작품을 예술로만 평가해달라는 소리가 허무맹랑하게 들리는건 저뿐인가 봅니다.
ㅇㅇ 2008/06/19 13:51 # 삭제
맞습니다. 새매님뿐입니다.
라인하르트 2008/06/19 20:10 #
음... 이완용의 글씨와 친일이 왜 연관이 되죠? 일당(맞던가...)의 글솜씨와 이완용 후작님의 친일 행위는 굳이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 물론 "명필이라 친일 행위 용서함." 이런 거나 '일본 하악하악' 같은 글도 명필이니 걸어두고 길이길이... 뭐 이런 것도 안 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