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씨의 흑역사. by 기불이

유시민씨가 독일유학을 가기 전에 써서 유학비용을 충당했다는 전설이 있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가 사실은 이 책 저 책의 짜깁기라는 것을 조목조목 밝히는 포스팅이 있다. 다들 보셨을 것이라 믿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시민씨가 잘못한 게 맞다. 유시민씨를 위해 변명을 해주자면 그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했다. 옛날에는 다들 땅을 사느라고 위장전입을 했지만 그게 떳떳한 일은 아닌 것처럼, 물론 이 변명이 저 무단인용 또는 표절의 정당화가 되진 않는다.

옛날에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논문표절 건으로 낙마했을 때, 정말 억울했을 거다. 왜냐면 그가 했다는 부정한 행위는 알게 모르게 무척 많이 행해지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단인용 또는 표절 로 말하자면 저 시절에는 그야말로 공공연히 이루어지던 일이었다. 유시민씨가 저 책을 낸 게 1988년인가 그런데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소위 대학교수들이 펴낸 한글교재들은 그야말로 외국책을 무단번역해서 낸 것으로 XXX 편역 혹은 XXX 엮음 심지어 XXX 지음 이런 저자명을 달고 출판되었다. 그나마 교수가 직접 번역을 했으면 좀 낫지, 역자(저자) 서문에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와준 XXX군 XXX군 XXX양.... 에게 감사.." 이런 문구를 보면 직감적으로

쟤들이 조금씩 나눠서 번역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던 시절이다. 대한민국이 만국저작권조약에 가입했던 게 1987년이었다. 최근에 상표권 문제 등으로 다시 신문지상에 오르내린 생 떽쥐베리의 "어린왕자" 만 해도 저 시절에는 시중에 깔린 책이 40종인가 그랬었다. 번역은 고만고만했고 심지어 거의 똑같은 번역인데도 출판사는 다 다른 그런 신기한 일이 일상이던 시절이다. 돌이켜보면 저작권조약이 발효되기 전에 서둘러 무단번역해서 낸 책들도 있고 그랬다 (소급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책은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하는 게 상식이던 때이기도 하고, 판권을 정식으로 사서 번역한 책이 드물 정도로 저작권의 부담조차 없던 때니 표절에 대해서야 별로 개념이 없던 시절이다. 더 옛날로 가면 정식출간되는 어린이잡지 등에서 일본만화를 가공의 이름으로 한국만화인 척 싣기도 했다는 것을 상기해보시기 바란다. 옛날에 클로버문고라고 하는 어린이 문고전집이 있었는데 여기에 일본만화가 무척 많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 어디 제대로 원저자 이름을 실어줬던가? 원저자에게 한마디 통보라도 하고 번역해서 팔았던가? 공중파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틀어줬는데 그 중 일부는 정식 방영권 계약없이 임의로 방영된 것이라고도 한다. 그때는 그랬다. 저 책이 나온 시기를 즈음해서 외국의 단편소설들 (SF 나 공포 등) 을 묶은 XX특급 이런 류의 책이 많이 나왔는데 이 책들은 제대로 판권 계약을 하고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저 책이 처음 나온 뒤 20년동안 참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요새도 그러나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학기초에 교재가 결정되면 학생들이 학교앞 "복사가게" 에 가서 이미 제본이 끝난 복사본을 사거나, 아예 교수가 과대표를 불러서 책을 주기도 했다. 교수에게 책을 받으면 학교앞 "복사가게" 에 가서 단체로 복사본을 만드는 것이다. 책에 따라서는 복사비가 더 비싼 경우가 왕왕 있어서 그럴 때는 서점에서 사기도 했다마는.... 교수가 수업에 쓰고 싶은 책이 있어도 수입판매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데 그래봤자 무단복사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뿐인가 대학원 실험실을 돌아다니면서 외국 책들의 불법복제본을 파는 책장사들도 흔했다. 이 사람들 덕분에 대학원생들은 최신 서적을 빠르고 값싸게 사서 볼 수 있었지만 그래봤자 불법복제.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가 유시민씨의 흑역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도 그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본인도 지금은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유시민씨가 무단인용 혹은 표절한 것으로 되어 있는 책들은 외국책의 번역서들이다. 이 번역서들은 제대로 판권을 사서 번역을 했을까? 아마 아닐 걸. 20여년전에 우리는 저러고 살았던 것이다. 심지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문학비평계의 큰어른인 김윤식 선생조차 1986 년 발간한 "한국근대소설사연구" 에서 일본책을 표절한 것이 드러나 망신을 당한 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난 20년간 세상이 참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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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언제 어떻게 쓰여졌던 것일까? 2008/04/30 12:54 #

    이런 글, 별루 쓰고 싶지 않습니다만... 알바하다가 눈이 빠질 것 같아 별 생각 없이 RSS리더 돌렸다가 걸렸던 글들이 있고... 사실관계를 그나마 쬐끔 더 안다고 글적거려둡니다. 일단... 저 정치인 유시민씨는 별루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평소에 했던 말이나 입장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섰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닌건 아닌거니까요. 뭐 너두 유빠냐... 라고 할 사람들을 위한 장치를 두기 위해 이걸 쓰는게 아...... more

덧글

  • 2008/04/30 05:3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8/04/30 06:09 # 삭제 답글

    저런 것 보단 "산업기술보호법"이말로 진정한 흑역사 같습니다만.
  • 세이리온 2008/04/30 06:41 # 답글

    김윤식 선생의 그 표절건은 김윤식선생의 제자의 제자(..) 에 의해 밝혀졌다고 하더군요.
    물론 김윤식선생은 변명하지 않고 즉각 잘못을 시인했고.
  • 하얀까마귀 2008/04/30 07:13 # 답글

    그때는 그랬지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그 뒤나 21세기 이후에 펴낸 책들도 근본적으로는 본인의 표현마따나 "지식소매상" 역할에 충실하긴 한데, 원전의 크레딧은 뭐랄까, 아담하게 인정하는 식이더군요. 안티가 아니라면 더 이상 시비걸긴 어려운 수준이긴 하지만요.
  • asdf 2008/04/30 07:18 # 삭제 답글

    거꾸로 가는 세계사 여전히 팔리고 있습니다만...
    최신판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는데 예전의 문제점(원저자명 및 참고문헌 미표시, 저작권 문제 등)은 해결이 된 상태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예전의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 2008/04/30 08:1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neungae 2008/04/30 09:40 # 답글

    여러 번 읽었는데...그랬군요..(뒷북)...
    옛날을 그랬다지만..요즘도 그런 경우가
    즐비하지 않을까요..알게..모르게..말입니다..

    기불이님..좋은 하루입니다..:)
  • joyce 2008/04/30 09:44 # 답글

    "....도와준 XXX군 XXX군 XXX양.... 에게 감사.."
    이건 요새도;;;
  • 스누피 2008/04/30 10:02 # 답글

    세이리온님/

    정확히 말하면 서울시립대에 다니던 이명원씨가 자신의 비평집 <타는 혀>에서 썼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이 표절이 김윤식교수의 작품세계에서 나타나는 현해탄 컴플렉스의 한 방증이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학문적 차원의 타당한 지적이었죠. 그리고 이로 인해서 이명원씨는 서울시립대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게 정설이죠. 김윤식 선생은 이명원씨를 그때 구해줬어야 합니다. 잘못 시인은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페이지를 통째로 들어다 썼으니까요.
  • bzImage 2008/04/30 10:50 # 답글

    게렉터 씨가 이 파트에 대해 제대로 쓰셨군요. 그런데 문제는 유시민씨가 개악을 했다는데 있네요.

    http://gerecter.egloos.com/3723540
  • 히기 2008/04/30 11:31 # 답글

    게렉터님 글 중에 다른 부분이야 그렇다 쳐도, "더군다나, 2004년에 책이 개정되면서, 이 책이 "거의 100% 요약, 발췌, 인용"이라는 사실과, 이 14권의 책 목록이 깨끗하게 삭제되어 버렸습니다." 를 보니 그 시절엔 다 그랬지.. 라고 생각해버리기엔 좀 그렇군요.
  • 어익후 2008/04/30 12:01 # 답글

    헉 히기다;;
  • 누렁별 2008/04/30 13:59 # 답글

    이 글에 트랙백 하신 분의 글을 보니, 유시민씨가 수배되어 도망다니면서 도피자금 마련을 위해 서한샘씨가 발행하던 <우리시대>란 청소년 잡지에 가명으로 연재했던 원고를 엮은 게 '거꾸로 가는 세계사'라는군요. 그랬으니 책이 조악한 건 이해할 만도 한데, 어쨌든 이 책은 그만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이 만국저작권조약에 가입하기 전에도 교수들이 해외학술저널에 논문 발표하고 했을텐데, 저작권 의식이 왜 그리 엉망이었는지 모르겠네요. 좀 힘께나 쓴다는 교수들이 예전에 쓴 책들이 제대로 된 물건인지 조사해 보면 재미있겠군요. 특히 요새 2MB와 친한 천여명의 교수들을 캐본다면, 으흐흐...
  • 베르디만세 2008/04/30 17:29 # 답글

    우리시대>라는 잡지, 월간지로 1년 조금 더 나오다가 계간지로 전환되었다가 바로 폐간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3에서 고1때까지 책 나오면 서점가서 주문해서 사보았습니다. 아무도 그 잡지를 사보지 않는다고 서점 아저씨가 신기하다고 하더군요. 저때문에 그 잡지를 보시곤 이런 책이 나온게 놀랍다고 말씀하시던 기억도 납니다. 우리 동네 <양지서점>아저씨.

    하여간 일반 고등학생들이 표지 모델로 나왔고 연예인 기사 같은거 없습니다. 역사,정치,철학,교육 등등 그 내용의 수준이 청소년 잡지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 높았죠.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것중에는 신돈이 괴승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우리 역사를 세우고자한 지식인 승려였다는 것, 당시 고려원에서 펴낸 <영웅문> 같은 무협지가 크게 유행하는 것은 독재정권하에서 사람들의 정신과 관심을 현실과 유리시켜 놓는 부작용이 있고 소설가 김용이 쓴 이런류의 책이 나왔던 50년대 대만의 정치사회 상황이 장개석의 절대 독재치하로 지금의 한국 현실과 유사하다는 것 등등...

    유시민의 책이 나왔을때 아 이거 여기 연재된건데 하며 읽었던 기억. <우리시대> 폐간후 그 잡지에서 보았던 글들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펴낸 출판사에서 다수 출판되기도 했는데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요즘은 대입논술때문에 이런 저런 교양 수준이 높은 글들이 실린 잡지가 나오기는 하던데, 아직까지 <우리 시대>만한 잡지는 그 후로 본 적이 없습니다.
  • 세이리온 2008/04/30 18:43 # 답글

    스누피//

    제가 읽은 바로는
    이명원이 그 글을 썼을때 이명원의 스승(이자 김윤식의 제자)이 '넌 어찌하여 스승을 욕하려 드느냐'면서 이명원을 매장시키려고 했으나 김윤식이 '나의 잘못이 맞다. 이명원의 지적은 학문적으로 아주 타당하다' 라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명원이 구제된줄 알았더니, 아니었군요 -_- 학교를 그만두었다니.
  • 스누피 2008/05/01 05:23 # 답글

    세이리온님/

    세이리온님이 써주신 이야기는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김윤식 교수가 한 것은 사태가 터지고 난 뒤 짤막하게 발표한 것 뿐입니다. 김윤식교수는 표절사태가 터지고 나서 "나의 잘못이다."라고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그러니까 김윤식 교수가 이명원의 스승에게 뭐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김윤식 교수는 신문사를 통해서 표절을 인정한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이명원씨의 고초는 아무도 막아주지 않았습니다.

    + 저는 김윤식 교수가 상당히 부지런하게 공부하고 작품활동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 업계에서 그만큼 독서하고 그만큼 쓰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단편소설 발표되는 건 거의 다 읽다시피 할 정도니까요. 그리고 이 사건이 터졌을 때 교수님이 얼마나 난처했을 것인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쌓아놓은 것이 한 번에 날아가는 그런 인생의 위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윤식 교수는 딱 표절을 인정하는 것만큼까지만 한 것으로 압니다.

    이명원씨가 겪은 고초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세밀히 검색해보시면 나올 것입니다.
  • 대밋 2008/05/01 11:07 # 답글

    이명원이 구제되면 제2,제3의 이명원이 마구 쏟아져 나올거고 그런 사태를 김윤식을 비롯한 노학자들이 감당할 수 있을 턱이 없겠죠.
  • ㅁㅁㅁ 2008/07/12 09:54 # 삭제 답글

    뭐요?

    "옛날에는 다들 땅을 사느라고 위장전입을 했지만 "?????

    참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 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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