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 by 기불이

1408 (2007)

공포영화란 게... 어, 바로 이 맛이야. 공포영화란 게 사람 놀래키고 벌벌 떨게 하는 게 다가 아니거든. 정말 무서운 게 뭐냐! 이걸 파고드는 성찰의 영화란 말이지.

귀신나오고 피가 튀고 괴물이 튀어나오고 이런 건 깜짝 놀래키는 거지 무서운 게 아니에요.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알려면 1408 을 보시라. 이하 스포일러 만땅.


이 영화를 보고나서 넘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저런 기사들을 뒤져봤는데 내가 파악한 영화내용하고 많이 다르게 파악해서 좀 당황했다. 한국에서 개봉한 버전은 편집이 좀 다른가?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1408 의 시나리오가 돌아다닌다. 그런데 내가 본 버전과는 다르다. 아마 감독판? 아마 시나리오 초판인 듯하다. 딸의 이름도 Katie 가 아니라 Gracie 로 되어 있다. 이대로 찍었어도 그럴싸했겠지만 막판 결말이 좀 트와이라이트존 삘이 나서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Mr. Olin 이 1408 에서는 전자제품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거기 전등도 있고 라디오시계도 있고 나중에 컴퓨터도 돌아가고... 하니 오류다! 라고 하고 있는데 잘못 이해하신 것이다. 1408 에서는 1408 이 의도하는대로만 작동한다. 그래서 셀폰은 먹통이고 무선인터넷을 통한 화상채팅은 작동하는 것이다. 라디오시계는 작동하지만 자기 멋대로 켜져서 의미심장한 노래 (...we've just begun) 을 흘리고 시계주제에 타이머로 변신하기도 하며 심지어 전원을 뽑아도 작동한다. 마이크가 가지고 다니는 소형녹음기는 어떤가. 멋지게 녹음이 될 뿐 아니라, Katie 와 만나는 장면에서는 녹음기를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목소리가 녹음된다. 1408 의 의지에 의해 멋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영화내용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이해하고 있어서 잠깐 혼란스러웠다. 이하는 내가 이해하는 영화내용이다. 감독판이 아니라 일반 개봉버전이다.

주인공 마이크는 원래 초자연적인 것들, 내세, 신 등을 믿지 않는다. 12살이후로 흡혈귀를 믿지 않는다는 대사도 나온다. 딸이 불치병에 걸리자 부인인 릴리가 딸을 안심시켜주느라고 내세며 천국,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지 않아 한다. 그전까지는 자기 아버지와의 이야기에 바탕한 훌륭한 소설을 쓴 좋은 작가였는데 딸의 죽음이후 사람이 돌변하여 (스스로의 표현으로는 different guy) 귀신이 나온다는 곳마다 찾아다닌다. 이를 바탕으로 싸구려 소설을 쓰지만 사실상 귀신같은 것은 없다고 조롱하는 그런 글들이며 게다가 공공연하게 귀신을 본 적 없다고 말하고 다닌다. 이런 그에게 Mr. Olin 이 보낸 도전장이 도착한다 (don't enter 1408). 영화에서는 누가 보냈는지 나오지 않지만 아까 이야기한 시나리오에는 이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그가 아니면 대체 누가 보냈겠는가.

이를테면 사후세계를 부정하고 귀신을 모독하는 건방진 작가에게 "저쪽세계" 의 존재가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이 호텔에 일하는 사람들은 과연 보통 사람들일까? 마이크를 만났을 때 반응을 보면 호텔직원들도 어딘가 범상치 않다. 아마 다 한통속일 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호텔 자체가 보통의 공간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가상과 현실이 마구 헐크러지는 공간이다. 마이크가 로비에 들어선 순간 그는 과거의 릴리와 케이트 (울고 있는 아기와 엄마) 와 한 공간에 존재한다. 나중에 14층에 가보면 복도의 식사에는 파리가 들끓고 과거의 릴리와 케이트가 1410 호에 들어가고 있다. 마이크 본인도 이 호텔에 묵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과연 과거에 이 호텔 1410 호에 묵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탈출시도중에 그가 잠시 틈입하여 보게 된 그 순간은, 과거의 자기가 절대로 볼 수가 없었던 순간 즉, 호텔에 투숙했다가 자기가 담배를 사러 나간 사이 바로 그 순간이다. Mr. Olin 은 거기 들어가지 말라고 설득하지만 사실은 떡밥을 마구 던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마이크가 사실은 귀신같은 것도 없고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우릴 지켜줄 신같은 것도 없지 않냐고 내뱉자 표정이 확 변하면서 열쇠를 준다. 신발롬 죽어봐라, 이런 거지.

1408 호는 어떤 곳일까. 내 생각에 지옥이란 게 있다면 저런 곳일 게다. 지옥에도 다양한 지옥이 있다는데 모든 것이 1408 에 있다. 뜨거워졌다가 추워졌다가 하며 사람을 괴롭히며 도망가려고 하면 모든 출구가 봉쇄된다. 절대로 달아날 수 없다. 게다가 무의식 저 아래에 가라앉아있던 아픈 기억들을 되살려내어 인내의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처음에 마이크가 들어간 곳은 돌핀호텔의 1408 호 였겠지만 이후 그가 환상을 겪는 곳은 자기의 무의식 속이다. 바깥으로 보이는 창문에 비친 사람도 자기이고, 도어뷰어로 바깥을 내다보니 보이는 것은 자기 눈알 뿐이다.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다. 자기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기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나쁜 놈이었다고 나오는데 마이크가 환상속에 찾아간 곳은 방안 한가운데 욕조가 있는 이상한 공간인데 아마도 정신병동이다 (아마 초판 시나리오에는 나중에 마이크가 찾아가는데 비로소 정신이 들어 마이크를 알아보는 장면이 있음). 마이크는, 젊었을 때는 나쁜 놈이었지만 나중에 정신이 이상해져 병원에 갇힌 부친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다. 투숙객의 약점을 치열하게 공략해서 스스로 "체크아웃" 하게 하는 것이 1408 의 정책이다. 이 공격이 얼마나 치열했으면 과거 투숙객 중에는 치킨수프에 얼굴을 처박고 익사하여 체크아웃한 사람도 있다. 마이크 말대로 "hard to do" 인데 그래야 할 정도로 1408 의 공격은 지독하다. 심지어 화상채팅중이던 컴퓨터가 다운되며 공포의 블루스크린이 뜬다. 이거 정말 무섭.... ㄷㄷㄷㄷ 아니 그러게 맥을 썼어야지....

그러나 우리의 마이크, 그 어떤 공격에도 지독하게 견딘다. 세상에 귀신같은 것은 없어! 이것은 환각이다! 아마도 이런 이성의 목소리를 무기삼아 버텨내는 마이크에게 1408 은 정말 지독한 공격을 해온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서핑중에 물에 빠졌을 때 겪은 환각일 것이라고 안심시킨 다음 갑자기 "그러나 사실 너는 1408 을 떠난 적이 없어!" 하고 놀리는 것이다. 이 처절한 절망감. 그러나 여기에도 마이크는 굴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닥쳐오는 1408 의 마지막 공격. 사랑하는 딸과의 재회이다. 다시 만났다는 기쁨도 잠시, Katie 는 참혹하게도 재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원래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을 잠깐 줬다가 뺏아가는 것이 가장 기분이 더러운 법이다. 이 마지막 공격이 끝난 후 시계는 0 가 된다. 마이크가 이겼다. 1 시간이 지났다. 극강 Katie 재만들기 공격도 마이크를 자살로 몰고가진 못했다. 다들 안심하고 있을 이 순간에 가히 "사다코 해골 건졌지만 여전히 사람죽는 공포" 가 재연된다. 이 지긋지긋한 한 시간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이거 정말 공포스럽다. 사람들 많이 얘기하듯이, 제대해서 집에 와서 밥 잘 먹고 한숨 잘 자고 일어났더니 훈련소야. 무섭냐 안무섭냐. 이렇게 무한반복하며 살래 아니면 "express check out" 을 할래? 하고 상냥한 목소리를 묻는 1408 에게 마이크는 "NOT YOUR WAY! 이런 식으로는 죽지 않겠다." 라고 일갈하며 화염병 공격을 가한 뒤에, 그야말로 지옥불에서 기분좋게 (아마도 딸이 죽은 후 끊었을) 담배를 피워무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불길속에서 "Keep quite, you bastard." 오오 그야말로 윤발이형의 뽀스가 좔좔... 그리고 "The decor is tattered and the staff surly... but on Shiver Scale I award the Dolphin hotel 10 skulls!" (실내장식은 허름하고 직원들은 불친절하지만 몸서리점수는 10점을 주겠다!) 오오 정말 멋지지 않아요? 혹시 홍콩에서 리메이크하면 꼭 윤발이형을 캐스팅하길 바란다.

마지막 장면에서 녹음기에서 딸의 목소리 ("엄마 아빠 나 모두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 흘러나온 후 마이크는 무서운 표정이 되고 릴리는 놀라는 장면에서 끝나는데 이걸 놓고 Film 2.0 이란 곳의 기사 Last Scene Standing, 결말의 재발견 영화 결말 이야기 에서는

"훗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소설로 집필하다 우연히 탄내가 지독히 밴 녹음기를 재생하며 딸의 목소리를 접하게 되는 마이크와 그의 부인은 딸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딸의 죽음이 안겨준 고통스런 기억들을 극복하는 치유의 순간을 맞이한다."

라고 쓰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개봉버전하고 내가 본 버전이 결말이 다른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 장면이 이렇게 이해가 될 수 있느냐 말이야. 내가 이해할 적에 이 장면은 마이크가 드디어 "체크아웃" 하기로 결심한 장면인 것이다. 그것도 릴리하고 같이 동반체크아웃할 생각인 것이다. 마이크는 1408 에서 Katie 를 만났다. 그는 사후세계도 확인했으며 게다가 Katie 가 신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살고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 외롭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체크아웃은 할 것이지만 1408 이 원하는 식으로는 체크아웃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not your way."). 원래는 1408 과 함께 체크아웃하여 Katie 를 만날 생각이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화재속에서 구조되엇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1408 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 1408 이 나가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릴리와 함께 케이티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 모두 여기 있으면 좋겠어요, 아빠, 엄마, 나....." 기왕이면 가족이 다 모이는 게 좋지, 하나라도 빠지면 섭섭하잖아....

이 영화에 보면 그 동안 그 방에서 죽은 사람들이 자기 행동을 반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걸 보면서 강풀의 "아파트" 가 생각이 났다. 혹시라도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영향을 주었을까? "돌핀 호텔" 을 처음 듣자마자 하루키 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 "댄스 댄스 댄스") 가 생각이 났는데 시네21 의 [알고 봅시다] 1408을 모두 더하면 공포의 13 에 따르면 킹이 하루키의 팬이라 하루키의 책에서 "돌핀호텔" 을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엄청 추워진 다음 방이 흔들리면서 번개와 함께 방에 걸린 그림이 변하는 장면은 Night Gallery (1969) (모두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 의 첫번째 에피소드를 연상시킨다 (나쁜 조카가 조금씩 다른 그림을 연속적으로 걸어서 삼촌을 살해).

대사도 무척 재치있다. 1408 이 smoking room 이냐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나중에 1408 은 smoking 한다든가 릴리가 마이크에게 "where the hell are you?" 하고 물어본다든가, 신을 믿지 않는 마이크가 수시로 "oh my god" "oh god" 하며 신을 부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영화내용에 비추어보면 무척 재미난 조크들이 많다. 혹시 다시 보실 기회가 있다면 유의깊게 들어보세요.

이 영화 예산이 2000만-2500만불 정도였다고 한다. 디센트의 제작비는 대략 600만불 정도였다고 한다. 디센트 3 편 만드느니 1408 한편 만드는 게 더 낫겠다. 디센트가 출구없는 동굴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폐소공포를 일으킨다지만 1408 은 더 지독하다. 이 영화는 도망갈 길 없는 방 한칸이다. 나중에는 창문마저 벽돌벽으로 바뀐다. 디센트의 감독은 속편을 만든다면 더 좁은 공간에 주인공과 괴물을 몰아넣겠다고 했다는데 방 한칸보다 더 작은 공간에 몰아넣을 수 있을른지.

처음에 시계가 60:00 이 되었을 때가 영화시작하고 40분되었을 때였다. 나중에 0 가 뜰 때는 90분쯤 되었다. 이게 50분이 아니라 60분이었으면 더 ㄷㄷㄷ 이었을텐데 원래는 60분에 맞추었는데 편집하느라고 10분이 잘려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mogibul.egloos.com/tb/3700956 [도움말]

덧글

  • ifelse 2008/04/13 18:05 # 답글

    컴퓨터가 다운되며 공포의 블루스크린이 뜬다. 이거 정말 무섭.... ㄷㄷㄷㄷ
    이부분에서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
    갑자기 보고싶어진 영화에요.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
  • essen 2008/04/13 18:50 # 답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니 영화가 마구 보고 싶어지네요.
  • xacdo 2008/04/13 19:27 # 답글

    보통 미국 호러영화가 잔인하기만 하고 공포스럽지는 않은 반면, 이 영화는 별로 안 잔인하고 비교적 공포스럽죠. 일본 호러영화 스타일을 많이 차용한 것 같습니다.
  • LONG10 2008/04/13 21:48 # 답글

    벨리타고 들어왔습니다.
    어쩌다가 보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DVD를 사버렸지요.
    극장판은 저도 치유라는 느낌은 안들었는데... 저 위 문장은 조금 이상하네요.

    DVD에 들어있는 감독편집판이 여러모로 나으니까 못 보셨다면 꼭 보세요.

    그럼 이만......
  • 박민성 2008/04/13 22:09 # 답글

    디워 한편 만들 예산이면 1408을 세 편이나 만들 수 있겠군요..
  • 맨땅에헤딩 2008/04/14 13:34 # 답글

    You can check out any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

    영화는 안 봤는데, 돌핀호텔이란 이름에서 저도 하루키가 생각났고, Hotel California도 생각나는군요.
  • coneco 2008/04/15 15:48 # 답글

    킹이 하루키의 팬이었다고요?
    어쩐지...
  • Lunemore 2008/04/17 08:58 # 삭제 답글

    글 맨위의 링크가 이상한것같아요~
  • 기불이 2008/04/17 09:25 # 답글

    아니 글쎄말이에요! 저게 뭐지? 바이러스에라도 감염됐나? 여하튼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덧글 입력 영역


애드센스 이미지 120*600

알라딘이벤트150*500


검색형 구글애드센스

맞춤검색

알라딘1*3프리미엄

애드센스이미지+텍스트 120*600

알라딘일반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