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9일
평론가와 대중취향의 괴리.
평론가와 대중취향 사이에는 백만광년쯤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디워 팔백만을 봐라. 근데 이게 꼭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평론가란 전업독자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가령 문학평론가라면 책을 읽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고 영화평론가라면 영화를 보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경제평론가는 당연히 경제를 읽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가령 신문에 나온 경제평론 같은 것을 이해하려고 해도 사실 좀 공부를 해야 하고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한다. 머리를 굴리기 싫으면 안읽으면 그만이다. 내가 그 평론을 안읽어도 경제는 굴러간다. 문학평론을 이해하려면 마찬가지로 공부를 좀 해야 된다. 거기 나온 용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책을 몇 권 읽어야 하는 그런 일도 있다. 영화평론도 제대로 따라가려면 영화를 좀 본 것도 있어야 하고, 기본용어들이나 담론을 이해할 정도로 공부는 해야 한다. 물론 보기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다. 내가 안봐도 책은 인쇄돼고 영화는 상영된다.
사람들은 경제평론이 어렵다고, 자기 생각과 안맞다고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문학평론은 물론 어렵고 대중이 좋아하는 소위 대중문학에 대해 평론가들이 인색하지만 큰 불평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영화평론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을까. 경제평론이나 문학평론은 어차피 대중이 잘 알지 못하거나 향유하지 않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영화평론은 대중이 생활속에서 향유하는 작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경향은 과학에서도 발견된다. 과학계의 트렌드가 하나둘이 아닌데 대중이 뭐 관심이나 있나. 근데 황교주가 "국익!" 하는 순간 오천만이 전부 복제전문가가 된다. 인터넷에 복제기술관련 용어들이 넘쳐난다. 황교주에게 의문을 표하는, 이를테면 과학평론가들을 대중들이 공공의 적으로 몰아붙인다.
즉 대중은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에 대해 "다른 의견을 보이는 전문가" 를 적대시한다. 대중에게 아부하는 전문가들, 쉽게 말해서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하는 소위 전문가 (꼭 그 분야를 잘 알 필요는 없고, 전문가를 자임하면 그만이다.)" 는 쉽게 숭배의 대상이 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소위 부실도시락 (겨울방학동안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급식으로 도시락을 지급했는데 원가에 비해 도시락이 부실하다고 난리가 났던) 소동때, 명색 언론인 한겨레마저 자기들 게시판에 올라온, 자칭 "전직 도시락업계 종사자" 가 쓴 글을 사설에 인용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신문사설위원이라면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큼 아는 사람인데도 이런 실수를 한다. 즉 누구나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마찬가지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전문가를 자임하면 별로 의심없이 덥썩 미끼를 무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경향인 것이다.
이런 경향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사기꾼들이다.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하는 전문가들에게 낚이는 다단계 피해자들을 봐라. 통계는 없겠지만 아마 이 다단계에 낚인 사람이 저 다단계에도 낚이고 아마 그럴 것 같다. 피해자도 책임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기도, 당하는 사람이 당하는 법이다. 상식을 갖춘 사람도 지능범에게 걸리면 사기를 당하겠지만 상식이 없는 사람보다는 확률이 낮을 것이다.
영화도 가지가지인데 다수를 차지하는 그저그런 오락영화 외에, 영화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예술영화도 있다. 비유하자면, 산업화된 기술이 오락영화라면, 예술영화는 기초과학연구에 비유할 수 있겠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기초과학연구가 없으면 산업기술도 없는 법이다. 당장은 돈이 안될 지 모르지만, 기초과학연구에 소홀하면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예술영화는 당장 돈이 안되겠지만 이런 성과가 영화예술을 발전시키고, 이 발전의 피드백으로 더 나은 오락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이런저런 지원제도가 있는 것이다. 영화예술에 대해 좀 아는 고급관객들이, 대중들의 취향과 상관없이, 예술영화나 새로운 시도를 서슴지 않는 실험적인 작품에 열광하고 심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크리넥스 쓰듯이 영화를 소비하는 대중이 이런 영화에 대해 별로 관심없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영화는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이어서, 본격문학이나 클래식 음악, 연극, 미술 등에 비해, 해당 예술에 대해 거의 교육받지 못한 대중이 평론가들과 대면하게 되는 빈도가 높다. 다시 말해, 자기 취향과 다르다고 길길이 날뛰는 대중에게 평론가들이 시달릴 확률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의 취향과 관련없이 소신있게 평론을 쓰는 평론가들은 얼마나 대단하냐. 이들이 냉정하게 평론을 하는 덕에 대한민국 영화예술이 발전한다. 평론가들이 대중에게 아부하는 순간, 영화예술의 장래가 어두워진다. 다시 말해, 지금처럼 대중들이 평론가들에게 대해 불만이 많고 평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평론가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잘 하고 있다는 뜻이며, 대한민국 영화예술의 미래가 창창하다는 뜻인 것이다.
평론가란 전업독자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가령 문학평론가라면 책을 읽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고 영화평론가라면 영화를 보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경제평론가는 당연히 경제를 읽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가령 신문에 나온 경제평론 같은 것을 이해하려고 해도 사실 좀 공부를 해야 하고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한다. 머리를 굴리기 싫으면 안읽으면 그만이다. 내가 그 평론을 안읽어도 경제는 굴러간다. 문학평론을 이해하려면 마찬가지로 공부를 좀 해야 된다. 거기 나온 용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책을 몇 권 읽어야 하는 그런 일도 있다. 영화평론도 제대로 따라가려면 영화를 좀 본 것도 있어야 하고, 기본용어들이나 담론을 이해할 정도로 공부는 해야 한다. 물론 보기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다. 내가 안봐도 책은 인쇄돼고 영화는 상영된다.
사람들은 경제평론이 어렵다고, 자기 생각과 안맞다고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문학평론은 물론 어렵고 대중이 좋아하는 소위 대중문학에 대해 평론가들이 인색하지만 큰 불평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영화평론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을까. 경제평론이나 문학평론은 어차피 대중이 잘 알지 못하거나 향유하지 않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영화평론은 대중이 생활속에서 향유하는 작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경향은 과학에서도 발견된다. 과학계의 트렌드가 하나둘이 아닌데 대중이 뭐 관심이나 있나. 근데 황교주가 "국익!" 하는 순간 오천만이 전부 복제전문가가 된다. 인터넷에 복제기술관련 용어들이 넘쳐난다. 황교주에게 의문을 표하는, 이를테면 과학평론가들을 대중들이 공공의 적으로 몰아붙인다.
즉 대중은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에 대해 "다른 의견을 보이는 전문가" 를 적대시한다. 대중에게 아부하는 전문가들, 쉽게 말해서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하는 소위 전문가 (꼭 그 분야를 잘 알 필요는 없고, 전문가를 자임하면 그만이다.)" 는 쉽게 숭배의 대상이 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소위 부실도시락 (겨울방학동안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급식으로 도시락을 지급했는데 원가에 비해 도시락이 부실하다고 난리가 났던) 소동때, 명색 언론인 한겨레마저 자기들 게시판에 올라온, 자칭 "전직 도시락업계 종사자" 가 쓴 글을 사설에 인용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신문사설위원이라면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큼 아는 사람인데도 이런 실수를 한다. 즉 누구나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마찬가지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전문가를 자임하면 별로 의심없이 덥썩 미끼를 무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경향인 것이다.
이런 경향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사기꾼들이다.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하는 전문가들에게 낚이는 다단계 피해자들을 봐라. 통계는 없겠지만 아마 이 다단계에 낚인 사람이 저 다단계에도 낚이고 아마 그럴 것 같다. 피해자도 책임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기도, 당하는 사람이 당하는 법이다. 상식을 갖춘 사람도 지능범에게 걸리면 사기를 당하겠지만 상식이 없는 사람보다는 확률이 낮을 것이다.
영화도 가지가지인데 다수를 차지하는 그저그런 오락영화 외에, 영화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예술영화도 있다. 비유하자면, 산업화된 기술이 오락영화라면, 예술영화는 기초과학연구에 비유할 수 있겠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기초과학연구가 없으면 산업기술도 없는 법이다. 당장은 돈이 안될 지 모르지만, 기초과학연구에 소홀하면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예술영화는 당장 돈이 안되겠지만 이런 성과가 영화예술을 발전시키고, 이 발전의 피드백으로 더 나은 오락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이런저런 지원제도가 있는 것이다. 영화예술에 대해 좀 아는 고급관객들이, 대중들의 취향과 상관없이, 예술영화나 새로운 시도를 서슴지 않는 실험적인 작품에 열광하고 심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크리넥스 쓰듯이 영화를 소비하는 대중이 이런 영화에 대해 별로 관심없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영화는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이어서, 본격문학이나 클래식 음악, 연극, 미술 등에 비해, 해당 예술에 대해 거의 교육받지 못한 대중이 평론가들과 대면하게 되는 빈도가 높다. 다시 말해, 자기 취향과 다르다고 길길이 날뛰는 대중에게 평론가들이 시달릴 확률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의 취향과 관련없이 소신있게 평론을 쓰는 평론가들은 얼마나 대단하냐. 이들이 냉정하게 평론을 하는 덕에 대한민국 영화예술이 발전한다. 평론가들이 대중에게 아부하는 순간, 영화예술의 장래가 어두워진다. 다시 말해, 지금처럼 대중들이 평론가들에게 대해 불만이 많고 평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평론가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잘 하고 있다는 뜻이며, 대한민국 영화예술의 미래가 창창하다는 뜻인 것이다.
# by | 2008/01/19 01:20 | 모기불 문화통신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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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쪽은, 대중에게 까일 평론가도 없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