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의 재활용 by 기불이

닭털의 재활용에 관련한 대단히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Chemical & Engineering News, p 36-39, Sep 6, 2004., http://pubs.acs.org/isubscribe/journals/cen/82/i36/html/8236sci1.html)

흔히 소나 돼지를 잡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모든 부분을 다 식용으로 쓰든지 아니면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머리는 먹지, 내장은 탕을 끓이지, 돼지창자는 순대로 쓰지, 발도 족발로 먹지, 소꼬리는 탕을 끓이지, 무릎 연골은 도가니로 먹지, 가죽을 쓰고 남은 자투리는 젤라틴 만들고 나머지 지꺼기는 아교만들고... 닭도 한국서는 거의 다 먹어치우는데 발은 닭발이라고 요리해서 먹지, 내장도 나름대로 요리든 어디든 사용하고 일설로는 벼슬도 갈아서 햄버거 만든다는데 이건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닭의 경우는 소 돼지와 달라서 버리는 부분이 많이 있다. 깃털이 그것이다. 도저히 인간의 위로는 깃털을 먹을 재주가 없으니 할 수 없이 버려야 한다. 오리털과 달라서 닭털로 베개나 파카 만들 것도 아니고. 그런데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일년에 "닭공장" 에서 생산되는 닭이 80억마리 이상이라고 하고 이 때문에 생산되는 닭깃털이 물경 20억-30억 파운드 가량 된다는데 (대충 10억 킬로그램=100만톤=1 메가톤) 이쯤되면 그냥 버리지 뭐 소리가 나올 정도는 아니다. 일부는 갈아서 가축사료로 쓰기도 하는 모양인데 여하튼 현재로선 닭털은 딱히 쓸 데가 없는 대규모 쓰레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단백질기반 쓰레기의 재활용 프로젝트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최근 내어놓은 연구성과는 거 신기하네 하고 말하고 말 정도가 아니고 대단히 유망하게 느껴진다. 이 연구를 수행한 사람은 미국 농림부 산하의 Environmental Quality Laboratory 에서 일하는 Justin R. Barone 박사. 이 결과는 논문으로 출판되었고 (대표적인 것은 Journal of Applied Polymer Science, 2005, 97(4), 1644-1651.) 또 특허로 출원되었다 (WO 2005089292).



닭깃털의 주된 구성요소는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의 특징은 시스테인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시스테인은 thiol 을 포함하고 있는 아미노산. Thiol 은 알콜의 OH 기의 산소대신에 황이 들어있는 구조) 교차결합 (crosslinking) 이 잘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교차결합이 잘되면 섬유가 가볍고 단단한 구조를 갖게 된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교차결합의 예는 소위 가황고무라고 하는 현대에 사용되는 고무들이다. 천연고무는 높지 않은 열에도 쉽게 부드러워져서 실용적이지 않은데 황을 넣어서 고무를 이루는 고분자들에 남아있는 이중결합을 교차결합시키게 되면 탄력이 있으면서도 안정하게 되어 비로소 실용적이게 된다.

닭깃털이 유망한 이유는 무엇보다 원료가 싸다는 것이다. 흔히 재활용품이 더 비싸지는 것은 후처리 비용이 비싸기 때문인데 (가령 인쇄된 것을 벗겨내야 하고 이물질을 제거해야 하고) 닭털은 씻는 것이 후처리의 전부이고, 워낙 원료 자체가 "쓰레기" 이기 때문에 원료비용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연구자들은 더 작고, 속이 빈 막대같은 구조를 가진 깃털을 선호하여 깃털을 깃대로부터 제거한 후, 깃털만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이 방법으로도 깃대는 쓰레기가 된다. 깃대도 구성성분은 깃털과 마찬가지로 케라틴이므로, 연구자들은 닭털을 통째로 처리해서 케라틴을 분리해서 쓰기로 했다. 그 결과 이들이 만든 것은 닭깃털로 만든 필름이다.

한국에서도 영농용 비닐이 큰 환경문제가 되고 있다. 잡초가 자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흙을 비닐로 덮는 것은 제초제의 사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매번 바꾸어야 하는 비닐은 그 자체로 공해가 된다. 하지만 이 닭깃털 필름은, 그냥 잘라버리면 그 자체로 흙이 되어버리고 (원래 생분해가 가능한 소재이기 때문에) 게다가 토양에 귀중한 질소를 제공해주게 된다. 이 연구가 그냥 재미있는 시도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비용절감에도 열심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공정을 개발하기보다 기왕에 존재하는 공정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내가 이 연구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이들은 이 연구를 통해 막대한 쓰레기인 닭깃털을 산업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우선 쓰레기를 줄였을 뿐 아니라,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생분해성 고분자를 개발하는 두 가지 성과를 동시에 올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외에도 다양한 제품을 닭깃털로 만들고 있다.


앞으로 더 연구가 진행된다면 더 많은 종류의 쓰레기들이 이런 식으로 재활용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오염이 덜하지만 동시에 효능이 떨어지는 제품을 사용한다든지 (기름도 제대로 안닦아지는 친환경세제라든가) 편리한 이기없이 좀 더 불편하게 산다는 것만으로는 환경을 살릴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호응을 얻기도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존의 편리는 그대로 누리지만 환경에 해가 없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환경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 연구는 환경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할 한 가지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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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렌지 껍질, 오렌지색, 플라스틱 2005/01/22 13:57 #

    오렌지 껍질로 만든 플라스틱? 힛. 남쪽계단님이 먼저 포스팅하셨다. 나도 라디오로 들으면서 언뜻 생각나는 게 있어서 찾아볼 참이었는데... 오렌지 껍질로 만든 플라스틱을 오렌지색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 나온 플라스틱이 오렌지색이어서 한동안 플라스틱이 널리 (값싸게) 쓰인 후 오렌지색에는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붙게 되었단다. 그래서 심지어는 바겐세일시 이 색을 활용해보라는 얘기도 나온다(미미 쿠퍼의 말이다). 요즘은 오렌지색보다는 핑크색 계열의 싸구려 플라스틱이 더 많다는 것도 어딘가에서 얼핏 본 거 같다(허나...... more

덧글

  • 크리스 2004/09/16 12:09 # 답글

    안녕하세요, 밸리에서 보고 들어왔어요.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
  • 야수 2004/09/17 19:51 # 삭제 답글

    다른 게시판에 올리셨던 만두관련글도 그렇고, 이런글 참 좋아요. 기불이오라버닝은 역시 멋쟁이. >_< (꺄-아)
  • 기불이 2004/09/17 23:31 # 답글

    원래 이런 글, 즉 과학통신 을 올리기 위해 블로그를 개설했던 것인데 좀 다른 쪽에 너무 치중했던 감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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