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못잖았던 '고대도시' 경주 라는 기사가 재미있다. 경주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발달한 대도시였으며 신라는 고대로마에 견줄만한 정복국가였다는 이야기다. 저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전성기 신라 왕경, 즉 경주에 17만8936호가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한 호에 다섯이 산다고 쳐도 90만 인구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선 조선 한양에 기껏 4만~5만 호가 살았고, 고대 경주가 사방 5.5km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는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17만8936명을 잘못 적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리학자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는 이 기록이 충분히 사실일 수 있다고 논박한다."
사방 5.5 km 라면 3025만 평방미터. 90만이 살았다면 한 사람에게 할당된 공간은 34 평방미터 = 10.5 평 (1 평 = 3.24 평방미터). 그러니까 주거공간, 도로, 상업지구 왕궁 등등을 모두 포함해서 한 사람에게 평균 10.5 평이 할당되는 크기다 이런 이야깁니다. 조금 좁다고 생각되죠? 앗차 올해부터 "평" 을 쓰면 잡아간다고 그랬던가? ㄷㄷㄷㄷ
"특히 '밥을 짓는 데 숯을 사용하고 땔감은 쓰지 않았다'는 기록에 주목한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연기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취사용 숯을 별도로 썼다는 것은 난방과 취사 모두에 사용할 수 있는 온돌이 당시 경주까지 보급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땔감이 대량으로 필요하지 않아 경주가 에너지난을 겪지 않고도 90만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는 추론이다. 한마디로 고대 거대도시 경주는 지리학적으론 충분히 존재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밥을 짓는데 숯을 쓰고 땔감은 쓰지 않았다라.... 음 취사용 숯을 별도로 썼다는 것은 그만큼 과밀해서 살았기 때문에 오염에 민감해서였을까요? 그렇다면 난방은 무엇으로 하였단 말인가? 나무로 했다면 그 많은 나무는 다 어디서 왔겠냐 말이죠.
그래서 이 모든 정황을 과학적으로 고려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과연! 그런 것이었군요!!
이런 주제로 책을 쓰면 좀 팔릴까?
"삼국유사에는 전성기 신라 왕경, 즉 경주에 17만8936호가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한 호에 다섯이 산다고 쳐도 90만 인구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선 조선 한양에 기껏 4만~5만 호가 살았고, 고대 경주가 사방 5.5km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는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17만8936명을 잘못 적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리학자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는 이 기록이 충분히 사실일 수 있다고 논박한다."
사방 5.5 km 라면 3025만 평방미터. 90만이 살았다면 한 사람에게 할당된 공간은 34 평방미터 = 10.5 평 (1 평 = 3.24 평방미터). 그러니까 주거공간, 도로, 상업지구 왕궁 등등을 모두 포함해서 한 사람에게 평균 10.5 평이 할당되는 크기다 이런 이야깁니다. 조금 좁다고 생각되죠? 앗차 올해부터 "평" 을 쓰면 잡아간다고 그랬던가? ㄷㄷㄷㄷ
"특히 '밥을 짓는 데 숯을 사용하고 땔감은 쓰지 않았다'는 기록에 주목한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연기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취사용 숯을 별도로 썼다는 것은 난방과 취사 모두에 사용할 수 있는 온돌이 당시 경주까지 보급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땔감이 대량으로 필요하지 않아 경주가 에너지난을 겪지 않고도 90만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는 추론이다. 한마디로 고대 거대도시 경주는 지리학적으론 충분히 존재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밥을 짓는데 숯을 쓰고 땔감은 쓰지 않았다라.... 음 취사용 숯을 별도로 썼다는 것은 그만큼 과밀해서 살았기 때문에 오염에 민감해서였을까요? 그렇다면 난방은 무엇으로 하였단 말인가? 나무로 했다면 그 많은 나무는 다 어디서 왔겠냐 말이죠.
그래서 이 모든 정황을 과학적으로 고려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고대경주에는 이미 고층아파트가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 고층아파트에서는 취사는 숯으로 하였으며
난방은 도시가스로 하였다는 결론.
게다가 이 고층아파트에서는 취사는 숯으로 하였으며
난방은 도시가스로 하였다는 결론.
과연! 그런 것이었군요!!
이런 주제로 책을 쓰면 좀 팔릴까?









덧글
Draco 2007/03/13 05:45 # 삭제 답글
잊을만하면 한번씩 웃음을 주시는 모기불님..
개발부장 2007/03/13 07:12 # 답글
...그리고 구리선이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보면 무선통신이 보급되어 있었다는 것도...
기불이 2007/03/13 07:19 # 답글
구리선. 좋은 지적입니다. 아마도 무선송전도 이미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군요.
에이엔_오즈 2007/03/13 09:46 # 답글
진짜 말도 안되는 소리죠 -_-;;; 백만명은 무신... 외곽에 고층아파트 들어서고도 20만명을 안넘는구만.근데 인구는 몰라도, 빈땅에 뭔가 지으려고 땅파면 바로 뭔가 툭 튀어나와 선긋고 발굴하는 걸 보면
지금보다 넓은 구역(..논밭)에 사람이 살고 있었을 거라는 가능성은 있어요 -ㅂ-
대강 15년쯤 전에 지어진 H아파트의 경우는 다 짓고 나서 돈 괴소문이
"공사현장에서 대장간 터가 나왔는데 싹 밀고 걍 지었다" 였는데,
당시 시민들은 "정말 그랬을지도 몰라 깔깔깔"하고 웃어댔죠.
작년에 코딱지만한 시가지 바로 외곽에 있던 공군기지가 바깥으로 옮겨가고
거기에 아파트단지를 짓는다고 할 때, 다들 말은 안 했지만 공사 지연을 예상했었죠.
근데 정말 나와서 발굴하고 있더라고요... 낄낄 -_-;
Dataman 2007/03/13 10:52 # 답글
실제로 경주박물관같은 곳의 모형을 보면 현 경주시가지 뿐만 아니라 불국사나 신경주역 등으로 이어지는 평지에 모조리 구획을 가정한 복원모형이 있습니다. 실제 황룡사나 안압지, 반월성같은 게 허허벌판에 생겼을 리가 만무함을 생각하면 이상한 결론은 아니죠. 90만은 아니라도, 한성보다 큰 도시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파파울프 2007/03/13 12:33 # 답글
당시에도 인구 수도 집중현상이 있었다라고 이야기 한다면 가능은 할지 모릅니다, 사실 5.5km라는 것도 왕경만을 대상으로 이야기 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유적의 발굴분포등으로 본다면 더 넓게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선과 신라가 다른 이유는 신라는 무역을 장려 했다는 겁니다.그러니까 농경만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조선보다 인구 집중이나 부양도 가능하리라는 추측이죠. 뭐,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이등 2007/03/13 16:07 # 답글
이미 공중도시가 지어졌을지도 모르지요.지구에 실증을 느낀 고대 신라인들은 그대로 대기권 밖으로 여행을 떠난거고요.
하얀까마귀 2007/03/13 20:00 # 답글
"숯을 사용하고 땔감을 쓰지 않았다"는 일종의 부유함이나 사치에 대한 묘사겠지 싶습니다. 백만인구가 숯만 연료로 사용한다면 몇년 안가 경상도 일대가 민둥산이 됐겠죠. 히히."삼척동자도 아는 얘기"라는 옛 기록이 나오면 옛시절의 발전된 교육제도를 찬탄할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_-
루드라 2007/03/14 07:43 # 답글
17만호라는 건 당시 인구를 추정할 때 좀 믿기 어렵긴 합니다만 실제로 고층 아파트는 있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이라는 탑이라는 이름 때문에 흔히 보이는 석탑을 연상하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내부에 넓은 생활 공간을 가진 70m 9층의 목조 빌딩이었습니다. 즉 고층 건물을 지을 기술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서양처럼 돌로 만든 아파트는 불가능하겠지만 2~3층 정도의 목조 아파트는 충분히 존재했을 거라고 봅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심지에 가장 쉽게 주택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니 그런게 없었다는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중국이나 일본의 대도시에서는 흔히 보이는 것이기도 하고요.
흔히 옛날 사람들의 생활상 얘기하면 보통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연상합니다만 조선 시대는 유교의 영향과 풍수지리설 때문에(풍수에서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높은 건물은 맞지 않다고 합니다) 고층 건물을 극도로 억제했기 때문에 고층 건물이 없는 것이지 기술이 없었기 때문은 아닙니다.(오랫동안 고층건물을 안 만들었으니 조선 중기 이후에는 기술 자체도 남아 있지 않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