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을 볼 수 있다면. by 기불이

공돌이는 대단해! 지워지는 볼펜. 을 쓰고나서 생각났는데, 자외선을 볼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가시광선을 흡광하지 못해서 하얗게 보이지만 자외선은 흡광하는 물질이 많죠. 자외선을 볼 수 있다면 이런 물질들의 아름다운 색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곤충들은 자외선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곤충이 보는 꽃은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더군요. 우중충한 색의 꽃도 자외선으로 보면 화려한 색을 자랑하기도 한다고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데.

다들 아시는대로 거미의 발은 모두 8 개입니다만 독니가 있는 주둥이 부근에 발 비슷하게 생긴 조그만 기관이 있습니다. 이것을 촉수 pedipalp 라고 하는데 먹이를 붙들 때 사용한다고 합니다. 얼마전에 읽은 기사에는 어떤 종류의 거미 (Cosmophasis umbratica ) 의 경우, 암놈의 촉수는 숫놈의 촉수와 다르게 자외선에 반응해서 형광을 낸다고 합디다 (Science 2007, 315, 481). 숫놈의 몸은 자외선을 반사하고 암놈의 촉수는 자외선에 반응해서 형광을 내고. 말하자면 가시광선만 볼 수 있는 우리의 눈에는 암놈이나 숫놈이나 촉수가 똑같이 생겼지만 이 거미의 눈에는 암놈의 촉수가 구분된다는 말씀 (자외선을 흡광해서 형광을 내니까). 다 똑같이 생긴 넘들이 상대방이 암놈인지 숫놈인지 어떻게 알고 가서 덮치는지 궁금했는데... 딱! 보면 아는 거죠. 자외선이 없으면 교미성공률이 떨어졌다는 것이 증거. 색이 다르니까. 그 기사에서는 특정종류의 거미가 그렇다는 결과가 최근 보고됐다고 했는데 모든 종류의 거미가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가 볼 수 있는 영역이 가시광선뿐이라면 자외선영역의 아름다움은 즐길 수 없는 것입니다.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물건도 자외선을 볼 수 있다면 다르게 보일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우리는 가시광선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외선 영역의 아름다움은 즐길 수 없습니다. "예술을 즐기려면 예술적으로 도야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맑스 저작에서 본 것 같은데 어딘지 기억이 가물가물). 예술적으로 도야되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애들 낙서나 피카소 그림이나 똑같아 보이는 거죠. 다시 말해, 피카소 그림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내가 무식하기 때문이지 피카소 그림이 하찮기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하고 더 즐기려면 내가 더 공부하고 내가 더 도야되어, 내가 볼 수 있는 파장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이게 중요하냐면.... 인생 한번 사는데, 기왕이면 재미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세상에는 모르는 게 더 좋은 일도 많이 있기야 하지만, 그래도 더 많이 아는 쪽이 인생을 더 재미나게 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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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거미의 경우. 2007/03/12 13:56 #

    자외선을 볼 수 있다면. 에 소개한 거미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C&EN 의 기사에 나온 사진인데요. 암놈의 촉수가 형광색으로 glow 하는 게 선명하죠?... more

덧글

  • 한때는 2007/03/12 08:52 # 답글

    신기한 걸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사람 중의 한명으로서.... 눈을 어떻게 잘 갈고 닦아서 "특훈"을 쌓으면 [근성]으로 자외선을 볼 방법이 생길 수 있을까요? - -;
  • 한때는 2007/03/12 08:54 # 답글

    무도장에서 한번씩 하얀 옷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것 또한 자외선 램프 때문이지요.. 그래서 선수들은 그 불빛으로 조명삼아 딱 보면 덥칠 상대를 바로바로... 쿨럭... - -;;
  • akpil 2007/03/12 09:13 # 답글

    자외선 고글 있습니다. - 말이 고글이지 사실은 적외선 투시경(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알죠...) 하고 비스무레하게 생겼습니다. 제가 사용했던 목적은 실리콘 웨이퍼에 특정 파장의 UV 를 쏘고, 그 투시경으로 보면 크랙이 있거나 하면 찾는 용도였습니다.
  • rainkeeper 2007/03/12 11:15 # 답글

    '경제철학초고'입니다. 그 부분에서 개인과 세계의 관계-예술,사랑,신뢰 따위-를 투자-회수 관점에서 묘사해 감동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 입장에서 한발자국만 더 나가면 '벌거벗은 임금님','소칼의 날조','뒤샹의 샘'.... 성인은 경을 짓고, 현자는 전을 만들고, 보통 사람들은? 둘 다 공부해야 되지요. 아, 씨밤바. 그래서 전 가시광선만 봐도 되는 대중예술 쪽을 좋아하는데 이것들도 오래 묵으면 맥락 찾기 시작하데요. 아놔. ㅜㅜ
  • 도라에몽 2007/10/26 01:52 # 삭제 답글

    글읽다가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 제 블로그로 가져갑니다.^^ 매번 즐겨찾기로 등록해놓고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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