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하우스 대충 완독. by 기불이

치약에 포름알데히드가!?

아무래도 책을 다 읽지 않고 저렇게 몇가지 조각만 가지고 평가를 한다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서 빌려왔습니다. 물론 번역본은 없으니까 1986 년에 나온 원본. 영어가 어렵지 않아서 읽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서문에 보면 이 책의 tone 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The only problem was the tone. I spent a few months trying draft chapters, assembling mounds of crumpled paper, wads prodigious enough to cause excitement among the locals, before ending up with something that seemed right.

이 책은 이런 기조로 쓰여졌다. 즉, 이 책의 목적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무척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발췌된 부분만 보았을 때와 달리, 전반적으로 볼 때는 꽤 재미있게 씌여진 책이었는데 유독 식품이나 생활용품쪽으로 가게 되면 이뭐병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천박하게 변해버린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부분들 (세균이나 진드기나 전자제품 등등) 은 대충 숫자만 보여줘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하지만, 식품이나 생활용품의 경우, 독자에게 무척 익숙한 물건들이고 독자들도 대충은 알고 있기 때문에 저런 천박할 정도의 과장을 하지 않으면 놀라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씌여졌다. 단지 그것뿐이다. 이 책에는 우주와, 그것을 이루는 모든 것들에 대한 존경과 경탄, 호기심따위는 없다. 단순히 놀라게 하기 위해서 씌여졌다. 그것뿐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지적 포르노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세상과, 세상을 이루는 부분에 대한 애정이 없기 때문에 놀람은 단순한 놀람일 뿐, 경탄이 아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세상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며 이런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과학의 기쁨인 것이다. 과학교양을 감히 표방하는 이 책에는 이런 기쁨이 없다. 수많은 데이터를 나열하고 있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나열일 뿐이다. 이를테면 과학을 빙자한 키취적 싸구려 감성뿐이다.

케이크 부분을 읽으면서 참 서글픈 느낌마저 들었다. 이 얼마나 천박한 감성인가. 버려질 수도 있는 저급한 재료들, 약간 맛이 간 재료들을 적당한 가공을 거쳐 다시 먹을 수 있는 식품으로 부활시키는 인간의 능력은 얼마나 경탄스러운가. 그러나 이 책은 이런 노력에 대해 일말의 존중도 보이지 않고, 시종일관 그런 쓰레기에 가까운 것으로 그런 것들을 만든다며 빈정거리고 있다.

독자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가령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부분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That something is a hypodermic injection of glue. It is produced from boiling down the parts of cattle and pigs that no one else will eat--udders, nose, tail, rectal skin -- and once injected it flows and spreads over every membrance of fat in the ice cream. This glue is what makes the ice cream gooey.

Glue 라는 단어는 아교라는 뜻이다. 가죽이나 뼈를 끓여서 젤라틴을 추출하고 남는 것이 아교인데 아교는 접착제로 널리 쓰인다. 이 아교는 저급의 젤라틴인데 이 젤라틴은 식품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아주 유용한 물질이다. 짐승을 도축하면 그냥 먹을 수 있는 부분은 그냥 먹고, 그냥 먹기에 품질이 좋지 않은 부분은 적당히 양념을 해서 먹고, 이렇게도 먹기 곤란한 부분은 적당히 가공을 해서 먹고, 도저히 그냥 먹을 수 없는 부분들은 저렇게 끓여서 젤라틴을 추출해서 쓴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버려지는 부분에서 쓸 수 있는 부분을 끝까지 추출해서 사용하는 집념, 그리고 기술이 놀랍지 않은가?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것은 젤라틴이다. 접착제인 아교가 아니다. 젤라틴은 아교에도 들어있지만, 아교와 동의어는 아니다. 비유하자면, 좌파와 주사파, 좌파와 소환유만큼 거리가 있다고 할까. 사람들은 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통점도 약간 있지만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저 책에서는 굳이 glue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쪽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저것은 저자가 세상을 대하는 천박한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사파를 좌파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 사실 소환유도 같은 초식을 쓰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옛날에 이미 포스팅한 바가 있다: 얼치기 환경단체 유감

가령 마술을 생각해보자. 비밀을 모르던 때에는 마냥 신기하다가, 트릭을 알게 되면 처음에는 실망하거나, 비웃거나 마술따위 시시해 하는 기분이 되거나 한다. 그러나 조금 더 나아가면 기본원리들을 적용하여 변용하는 재미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게 되면 관객을 속여서 즐겁게 하는 마술의 참 아름다움을 깨닫고 경탄하게 된다. 꼭 마술만이 아니라, 우리는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비슷한 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

과학교양서적이란, 최소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독자들을 더 깊은 사색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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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새벽사랑 2006/11/01 15:52 # 답글

    저도 이 책을 지인에게서 추천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재미있는 과학서라고 난리가 아니었더랬지요....-_-;;;
    책보다 기불이님의 포스팅들을 먼저 접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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