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에 생선비늘이? by 기불이

치약에 포름알데히드가!?

시크릿하우스란 책에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그 중에 립스틱에 생선비늘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모양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All that's lacking now is the glisten. Women who smear on lipstick expect to get some glisten for their troubles, and their wishes do not go unheeded. When the preservatives and perfume are pouring, something shiny, colorful, almost iridescent -- and happily enough not even too expensive -- is added.
That something is fish scales, It's easily available from the leftovers of commercial fish packing stations. The scales are soaked in ammonia, then bunged in with everything else.


비늘이란 것은 물고기의 몸을 덮고 있는 단단한 물질인데 야후백과사전에 따르면 "어류·파충류 체표의 대부분과 조류 및 일부 포유류 체표의 일부분을 덮고 있는 피부의 변형물. " 이다. 조개껍질이나 진주의 영롱한 색채는 아주 옛날부터 산업적으로 이용되어 왔는데 가령 한국의 자개장식은 전복, 소라, 진주조개 등의 껍질의 영롱함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장식이다. 서양에서는 1656 년에 카톨릭의 묵주인 로사리오 rosary 를 만드는 프랑스의 François Jaquin 이라는 사람이 조개껍질을 처리해서 소위 펄에센스를 얻었다. 이것은 구아닌의 결정이었는데 이 결정이 갖는 영롱한 색때문에 이것은 이후에 화장품산업의 중요한 원료가 되었다. 이 구아닌은 DNA 를 구성하는 염기의 하나인 바로 그 구아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나 읽는 독자의 몸속에 존재하는 물질로서, 이것이 없으면 우리도 없는 대단히 중요한 물질이다. 가령 예를 들어서, 샴푸의 반짝이는 pearl 도 이것일 수 있다. 이것일 수 있다 라고 쓴 것은 구아닌 말고도 다른 물질들도 같은 용도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는 구아닌의 결정이 갖는 결정구조에서 오는데 이 효과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1917 년의 일로서, 261년 뒤의 일이다. 그러므로 립스틱에 생선비늘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들어갔던 것은 생선비늘에서 추출한 구아닌이다.

그런데 구아닌 자체는 피부에 자극이 될 수도 있고 또 아마 무엇보다 수요를 당해낼 수 없어서 요즘은 다양한 성분의 혼합물인 운모에서 얻은 금속산화물들을 많이 쓴다 (생선 백톤에서 비늘 일톤이 나오고, 비늘 일톤에서 펄에센스 1 파운드 (450 g) 이 나온다고 한다). 비늘이야 쓰레기니까 남아돌겠지만 비늘에서 펄에센스를 추출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죠. 생선비늘에서 추출한 구아닌은 무척 비싸기 때문에 만일 이게 들어간 립스틱이 있다면 그건 대단히 고급제품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책이 나온 1985 년에는 구아닌을 립스틱에 많이 썼는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것이 이 포스팅을 하게 된 첫번째 이유이지만 이건 사실 사소한 일이다. 이런 건 그냥 각주로 요즘은 금속산화물을 쓴다 라고 하면 그만인 부분이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나도 옛날에는 잡학을 다룬 책을 곧잘 읽곤 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잡학사전류의 책들은 읽은 그 순간에는 상당히 재미있고 유식해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전혀 깊이가 없어서 얻는 바가 없고, 더 심각하게는 쥐뿔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 특정한 아이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술자리에서 수다를 떨기에 좋은 소재거리들이지만, 사물과 세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만들어내고 독자를 오류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에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령 치약에 들어간다는 글리세롤을 설명하면서 "부동액과 비슷하다" 라고 잰체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자. 화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무척 재미있는 표현인데 (비슷하게 생긴 것은 사실이고 구조의 조그만 차이가 몸안에서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니까) 화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부동액같은 독극물이 치약에 들어있다는 인상을 낳기 십상이다. 저자가 화학을 알고서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썼는지 아니면 어디서 글리세롤이 에틸렌글리콜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니들은 이건 몰랐지?" 하는 느낌으로 넣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비전공 독자들을 오류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은 좋지 않다.

생선비늘에서 얻은 구아닌결정을 사용해서 립스틱의 펄효과를 낸다는 이야기와 "립스틱에는 생선비늘이 들어간다" 라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얻었다고 해서 곰팡이핀 떡을 먹으면 감염이 치료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 를 뭘로 만드는지 아냐? .... 로 만든다." "웨엑~ 정말이야? 앞으론 못쓰겠다." 이런 대화패턴은 무척 익숙한데 말하나마나 전혀 비과학적이고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심지어 쓰레기에서도 쓸모있는 것을 추출해내기 위해서 무척 노력하고 있고 나는 이런 태도가 자원의 낭비를 막고 지구환경파괴를 최소화하는데 무척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쓸모있는 무언가가 쓰레기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거 참 대단하다! 그렇게 해서 버려지는 것을 다시 살려내는구나" 하고 기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런 태도의 차이가 서술의 차이를 낳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을 잰체하며 쓰는 글들은 그래서 읽기가 불쾌하다.

저런 잡학사전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자들을 더 깊은 사색의 세계로 인도하지 않고 피상적인 지식에 만족하고 기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생선비늘로 립스틱을 만든다는 이야기에서 왜, 어떻게 라고 하는 이 아름답고 흥미로운 세계로 인도할 수도 있지만 저자가 아는 게 없거나, 지적호기심이 결핍되었거나, 혹은 독자를 그 세계로 인도해선 안될 이유가 있을 때 (가령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일 때) 흔히 글쓰기가 그 전단계에서 중단되는 것을 본다 (꼭 시크릿하우스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과학이란 것은 본질에 대한 끝없는 추구이고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이 과학의 기쁨이란 것을 생각해볼 때 저런 잡학사전이 과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쾌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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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선비늘 대용품: 운모 + 산화티타늄 2006/10/31 08:08 #

    립스틱에 생선비늘이? 에서 쓴대로, 생선비늘에서 구아닌을 추출해서 쓰는 경우도 있는데 피부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고, 무엇보다 비싸서 립스틱따위에 쓰기에는 좀 곤란하다. 만일 생선비늘이 들어간 립스틱이 있다면 무척 고가품일 것 같다. 그러면 립스틱이나 화장품에 들어가는 반짝이는 펄은 무엇으로 만드느냐. 운모로 만든다고 합니다. 운모는 빛을 일부는 반사하고 일부는 굴절시켜 통과시키는 과정을 통해 아름다운 색을 낸다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more

덧글

  • 덧말제이 2006/10/31 06:43 # 답글

    얼마 전 TV를 보니 자개에 조개류만 쓰이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반짝이는 초록빛 나는 벌레 껍질도 쓰이고, 계란 껍질도 쓰이고(물론 이것은 현대에 와서 낸 아이디어일지도 모르겠지만, 작업을 하던 분은 국가로부터도 인정받은 장인이었어요).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멋지게 되는 거구나 했어요
  • mino 2006/10/31 07:25 # 답글

    순간적으로 립스틱에 생선비늘-이라기에, "아니 그 생선 비늘 고 쪼따시만한 것을 (아무리 생선 공장에서야 널려있다 해도) 수집해서 대충 씻어서 집어넣을정도로 화장품 회사들은 정성이 남아돌았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기불이 2006/10/31 07:52 # 답글

    주로 청어의 비늘에서 추출하는데, 가공을 하다보면 비늘은 벗겨야 하니까 대량으로 발생하는 쓰레기는 맞죠. 여기서 구아닌을 추출해서 쓰는데 대단히 비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본문에 덧붙인대로, 생선비늘이 들어간 립스틱이란 무척 고급제품일 것 같습니다.
  • 곰부릭 2006/10/31 09:18 # 답글

    예전에 립스틱에는 갈치추출물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습니다.
  • 기불이 2006/10/31 09:37 # 답글

    갈치표면의 반짝이는 것이 구아닌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갈치에서도 얻은 구아닌을 쓰기도 했다더군요.
  • 춤추는붉은달빛 2006/10/31 10:32 # 답글

    "술자리에서 수다를 떨기에 좋은 소재거리들이지만"
    이부분이 어째 참 마음에 드는 것은 저 뿐일까요?
    생선 비늘이 화장품에 쓰인다는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다루던 소재죠...
    물론 다큐멘터리는 생선비늘에서 추출한 물질이라고 분명히 말했지만요...
  • 재인 2006/10/31 16:32 # 답글

    립글로스는 지렁이 기름으로 만든다는 소리 때문에 기겁했던 사람들도 많죠. 잡학사전류에 대한 의견에 공감했어요.
  • 다크엘 2006/11/01 03:47 # 답글

    어렸을때 잡학사전류를 말 그대로 재미로 보다가 후에 좀 나이먹어서 이곳저곳에서 찾아보고 자세하게 파고들어보니 이건 아닌데. 싶은게 많아서 최근엔 손놔버렸다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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