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맛을 위하여. by 기불이

조청, 엿, 물엿

사탕수수나 사탕무우를 으깨면 세포가 부서지고 달콤한 즙이 나온다. 이 즙을 졸이면 시럽이 되고 더 졸이면 흑설탕이 되고 원심분리하면 당밀과 설탕으로 분리된다. 이 과정에서 단맛을 내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네 가지가 나오는데 즙, 시럽, 흑설탕, 설탕이 그것이다. 당밀은 설탕을 분리하고 남은 지꺼기인데 발효시키면 럼주가 된다.

설탕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타민이 제거된다는 둥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러면 사탕수수즙을 그대로 쓰면 딱 좋겠군!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면 우선 사탕수수즙은 물이 너무 많다. 가정에서 설탕을 어디에 쓰느냐면 가령 커피에 단맛을 더하기 위해서 쓰죠. 그런데 사탕수수즙을 넣는다고 한다면 커피의 부피가 두배이상 늘어나지 않겠냔 말입니다. 커피가 묽어지면 쓰겠습니까? 게다가 물이 많으면 금새 부패한다. 또 물은 비중이 높아서 무겁다. 물은 언제라도 첨가할 수 있다. 그러면 물을 제거합시다. 그럼 시럽을 쓰면 되겠다. 그래도 되겠지만 여전히 물이 포함되어 무겁고 게다가 색깔이 있죠 (사탕수수즙도 색을 띈다). 커피라면 별 상관없지만 가령 노란빛 레모네이드에 시커먼 시럽을 넣는다면? 이게 왜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은 요리를 해본 적 없는 사람. 간장이나 소금이나 짠 맛을 더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맑은 국에는 간장을 (많이) 쓸 수 없습니다. 왜냐면 색깔 때문이죠. 흑설탕은 고체이지만 여전히 색깔이 있으니까 원심분리해서 순수한 sucrose 를 얻는데 그게 설탕이다.




그렇다면 설탕만 있으면 되느냐. 그렇지 않죠. 설탕은 흰 색이고, 고체이고, 수분이 제거되어 있어서 보관하기도 쉽고 운반하기도 쉽고 사용하기도 쉽고 순수한 단맛이므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지만 흑설탕은 소량의 당밀이 포함되어 있어서 좀 더 복잡한 단맛을 가지고 있고 시럽은 좀 더 복잡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가령 호떡에 흰설탕을 넣으면 되겠습니까? 호떡에는 역시 흑설탕을 넣어야 시각이 행복해진다.

다시 짠맛으로 돌아가면, 소금도 정제염부터 천일염, 죽염, 구운소금 등등 다양한 종류의 소금이 존재하는데 다 용도가 다르고 맛이 다르다. 천일염은 짠맛외에도 복잡한 맛을 내고 정제염은 순수한 짠맛을 낼 뿐만 아니라 값이 싸다. 소금과 간장의 차이는 색깔만이 아니다. 간장은 단백질을 분해한 것이기 때문에 짠맛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아미노산에서 오는 복잡한 맛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방에는 소금과 간장 모두 필요하다. 구운소금 등은 좀 더 깊고 복잡한 짠맛을 가지고 있지만 비싸다. 정제염은 순수한 짠맛이다. 그러므로 깊은 짠맛이 필요한 요리에는 고급소금을 써야 하겠지만 가령 김치를 담는데 구운소금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옛날 생각을 하면 김장을 할 때는 제일 싸구려 소금을 사다가 물에 녹이고 흙을 가라앉힌 후 윗물만 썼는데. 그러므로 다양한 종류의 소금 및 짠맛을 내는 조미료는 모두 필요하다.

꿀은 부드러운 단맛을 내지만 역시 비싸다. 조청이나 엿으로 단맛을 낼 수도 있지만 단맛외에도 잡스러운 맛들이 섞여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는 조청을 써도 되겠지만 역시 고급스럽고 단순한 단맛이 필요한 요리에는 쓰기 어렵다. 순수한 단맛은 역시 설탕이 제격이다. 그러면 시럽은 필요없느냐면 그것도 아니죠. 이미 고체가 된 설탕을 다시 용해시키려면 적당한 온도가 필요하다. 가령 냉커피에 설탕을 넣어봤자 녹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미 만들어진 용액이 필요한데 이게 시럽이다. 그리고 정제하지 않은 시럽은 그 소스에 따라 독특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 또 시럽의 색이 중요할 때도 있다. 가령 팬케이크에는 역시 갈색의 시럽을 부어야한다. 팬케이크에 물엿을 붓는다거나 설탕을 뿌린다고 생각해보세요. 따라서 시럽도 중요한 조미료가 된다. 그러나 시럽은 색깔이 있어서 종종 사용이 제한되는데 그러면 색깔을 내는 이물질을 제거하면 되겠죠. 그래서 나온 것이 물엿. 물엿은 적당한 점도를 가진 무색의 액체이므로 사용하기가 편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거나 어떤 것이 더 낫다거나 이렇게 말하기는 곤란하다. 제각각 서로 다른 맛과 향을 가진 조미료이고 서로 다른 용도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필요없는 것은 없어, 이런 것이죠. 가끔 필요없는 단체는 있습니다만....

소설 "1984년" 의 진리성 (眞理省) 에서는 사전의 단어수를 차근차근 줄여나간다. 가령 good 이란 단어가 있다면 bad 라는 단어는 필요없다는 식이다. ungood 이라는 단어를 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ungood 과 bad 는 다르다. extreme good 과 extreme bad 사이에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고 한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 맛도 마찬가지다. 단맛, 짠맛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맛의 종류와 깊이가 서로 다르다.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가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알 까닭이 없다. 자기가 아는 조그만 세계에 갇혀서 그것만이 제일인 줄 알고 살아가는 우물안 개구리들이 세상에는 정말 많다. 가령 맥도날드를 예로 들면서 "서양음식" 을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한국의 중국집 짜장면 탕수육을 먹으면서 "중국음식" 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이라든가... 정확하지도 않은 FACT 를 가지고 멀쩡한 식품 및 식품첨가물을 욕하면서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다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다 필요하다. 가령 조청에는 설탕보다 미네랄이나 다른 영양소가 조금 더 들어있을 지는 모르지만 설탕은 대신 더 깔끔한 단맛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조미료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굉장히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고 그래서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짠맛은 천일염으로만, 단맛은 꿀로만, 신맛은 식초로만 내는 그런 세상은 너무 밋밋하고 단조롭고 심심하고 무엇보다 맛없다. MSG 는 몸에 나쁘지는 않지만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그것은 MSG 가 모든 음식의 맛을 똑같이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MSG 의 맛은 너무 강해서 재료가 무엇이든 맛이 똑같아져버린다. 이것은 일종의 저주같은 것이다. 싼 비용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대신 맛이 다 똑같아지는.

다양한 게 좋다.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지만,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중국에는 동네마다 장을 담궈 파는 집이 따로 있어서 동네마다 장맛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옛날에 들었는데 굉장히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구단위로 장을 공급하는 집이 하나씩 있다면 구마다 장맛이 달라질텐데. 어느 집에 가든 똑같은 장을 쓰기 때문에 너네집 된장국이나 우리집 된장국이나 사먹는 된장국이나 다 맛이 같다면 참 서글픈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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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제염은 건강에 나쁜가? 2006/03/02 07:48 #

    다양한 맛을 위하여. ‘5S’가 웰빙에 치명적인 이유 라는 기사를 읽었다. 혹시해서 이글루파인더를 돌려보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하신 분도 몇 눈에 띈다. 이런 기사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는데 또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해서 읽는 재미를 준다. 여기서 말하는 5S 는 설탕, 소금, 스낵, 흡연, 운동부족인데, 흡연과 운동부족은 큰 문제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만 나머지는 좀 편향되거나 왜곡되게 씌여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설탕이나 스낵부분에 ...... more

덧글

  • xmaskid 2006/02/03 01:27 # 답글

    저도 비슷한 이유로 분식집에 가면 늘 떡만두국을 시켰답니다. 어떤 집에가도 똑같은 소고기 다시다를 쓰기때문에 실패할 염려가 없거든요.
  • zhee 2006/02/03 01:49 # 답글

    문화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문화는 " 다양성 " 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의 우월성을 논할 수 는 없는 것이지요. 어째 한국은 문화쪽도 그렇고, 국민들이 다양성을 싫어하는게 아닌가 싶을때가 있습니다.
  • Rivian 2006/02/03 02:11 # 답글

    MSG 는 몸에 나쁘지는 않지만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그것은 MSG 가 모든 음식의 맛을 똑같이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 굉장히 동감합니다. 싸고 편하지만 자기만의 맛은 없어지고... 어떻게 보면 MSG를 쓰지 말자는 것과 설탕을 먹지 말자는 것이 맛의 다양성 측면에선 상반된 위치에 있다는 게 참...-.-
  • 2006/02/03 13:47 # 삭제 답글

    "정제하지 않은 시럽은 그 소스에 따라 독특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라는 문구를 보자 갑자기 단풍당이 먹고 싶은 것이!!!! 메이플 시럽 넣은 시폰 케이크와 커피 먹고 싶어욧!!!!!!
  • 곰부릭 2006/02/03 17:34 # 답글

    일본역시 지방마다 된장/간장(공장생산품이라도)이 각각 다르게 만들어지고 특색이 살아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극히 일부에서는 지방마다 개성이 넘치는 먹거리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먼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은 농수산홈쇼핑;;;이라던가 우체국쇼핑;;덕분에 지방특산물을 먹으려고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주문할 수 있게는 되었죠..MSG의 맛 통일은 정말 무섭습니다. 진짜, 길거리 떡볶이 집에선 국자로 퍼넣는다니까요.(맹물에 설탕간장오뎅 조금으로 그 맛을 내려면 별 수 없겠죠..)
  • 빛의제일 2006/02/03 17:41 # 답글

    고품격요리블로그가 되신 듯합니다.
  • 기불이 2006/02/04 02:07 # 답글

    이렇게 많은 동지들을 보니 안구에 습기가... T^T 나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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