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방매트의 문제 5: PVC 수액백 과연 해로운가? by 기불이

서울환경연합 (참고사이트: 환경운동연합) 이 최근 병원에서 사용중인 수액백이 PVC 로 만들어졌다며 PVC 수액백의 사용을 중지하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주요병원, 인체및 환경 피해 PVC 수액백 사용 드러나...). 이 단체는 PVC 의 DEHP 가 용출되므로 PVC 수액백은 위험하다고 주장했고, 이 기사에서는 유럽에서 PVC 의료용품의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썼다. 과연 이게 진실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이 포스팅의 주제.

우선 해당기사의 중요부분을 인용하자면,
주요병원, 인체및 환경 피해 PVC 수액백 사용 드러나...

DEHP의 유해성은 하버드대 연구팀에 의해 2002년 12월 “남성 정자의 수와 운동성을 저해한다”, EU와 스웨덴 국립화학물질 검사소에 의해서도 2001년 “다른 동물 종들에서 관찰된 고환, 번식력, 성장에 대한 DEHP의 효과는 인간에게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미 밝혀졌다. 또 DEHP가 구강을 통해 신체장기에 노출됐을 경우 위장장애와 간암 등을 유발할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도 보고되고 있다.

과학의 영역에서는 일년만 지나도 상당히 구닥다리 데이터가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미 이전글들에서 썼듯이 쥐를 사용한 실험에서 저런 효과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에게서 믿을만한 데이터는 아직 없는 실정이고 바로 직전 글, 놀이방매트의 문제 4: 의료용품의 DEHP 문제. 에 썼듯이 신생아시기에 고농도의 DEHP 에 폭로된 어린이들의 사춘기 성적 성숙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데이터도 존재한다. 게다가 제한된 데이터이긴 하지만 영장류에서, 쥐가 보여준 것과 같은 역효과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보고도 있다. 엘펜님이 이전글의 덧글에서 알려주신 최신연구 (in press, 현재는 여기 에서 pdf 파일로 볼 수 있다) 에서는 산모의 소변에서 각종 프탈레이트의 대사체를 검출하고 이 농도와 항문-성기간 거리지수 AGI 라고 불리우는 값을 비교해서, 특정 프탈레이트의 대사체 농도가 높을수록 AGI 가 짧아진다는 것을 보이고, 이로서 프탈레이트가 신생아의 발달을 저해한다는 잠정적 결론을 도출했지만, 여기서도 DEHP 의 활성 대사체인 MEHP 는 예외적으로, AGI 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이후에 다시 포스팅할 예정).

이에 미국 FDA는 2002년부터 공중보건 경고를 통해 혈액 투석액의 경우 위험하기에 어린아이나 임산부에게는 DEHP가 포함돼 있지 않은 의료용구의 사용을 권하고 있다. 유럽의회의 환경위원회에서도 2000년에 의료용품에서 PVC가 사라져야 한다는 점에 승인했고 일본도 2000년부터 PVC 수액백의 완전한 회수를 의무화하는 법제를 시행하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환경부가 DEHP를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규정하고 식용 랩과 유아용 치아발육기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수액백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혈액투석 이야기로 점프를 하면서 FDA 의 권고를 끌어들인다. 놀이방매트의 문제 4: 의료용품의 DEHP 문제. 에 썼듯이 혈액투석의 경우 고농도의 DEHP 에 폭로되기 때문에 상당히 염려가 되는 것이 사실인데, 이것과 수액백의 문제를 등치시킬 수 없다. 여기서 인용된 FDA 의 권고문 Public Health Notification:
PVC Devices Containing the Plasticizer DEHP
의 원문은 여기 에서 pdf 파일로 볼 수 있는데, 수액백에 관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위에서 보듯이, 일반 수액백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고, 용해도를 높이기 위해 용매를 포함한 약을 보관하거나 환자몸에 투입할 때도, 레이블에 명기된대로 주의하면 거의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권고안은 고농도의 DEHP 에 폭로될 가능성이 있는 의료처치 과정에서는 가능하면 PVC 가 아닌 다른 소재로 만들어진 의료용품을 쓰거나 헤파린 코팅된 제품을 쓰라고 권고하면서 끝을 내고 있다. PVC 수액백에서 DEHP 가 나와서 환자에게 해롭다며 겁주는 기자회견의 기사를 쓰면서, 권위를 이용하기 위해 FDA 보고서를 들먹이면서 정작 수액백 부분은 쏙 빼고 혈액투석 이야기만을 인용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태도인가? DEHP 가 거의 용출되지 않는 수액백이야기를 하다가 고농도로 폭로될 위험이 있는 혈액투석 이야기를 슬그머니 등치시키는 것은 대단히 고약한 태도. 게다가 혈액투석시에도 헤파린 코팅이 된 튜빙을 사용하면 DEHP 가 거의 용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면 유럽의회의 환경위원회 이야기는 어떤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자료 업데이트에 다소 게으른 것 같은데, 2002년 유럽의회의 환경위원회에서 발표한 최종 권고안 OPINION ON Medical Devices Containing DEHP Plasticised PVC;
Neonates and Other Groups Possibly at Risk from DEHP Toxicity (원문 pdf 파일은 여기) 에) 에서는 "DEHP 가 사람에게서 암을 일으킬 염려는 없고" "쥐의 실험에서 문제를 일으킨 메카니즘이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고 말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 반작용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어떤 경우에는 대용품이 존재하고 코팅을 하면 용출을 막을 수 있지만" "항상 혜택과 위험사이의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고 쓰고 있다.

그리하여 EU 환경위원회의 최종결론은 무엇인가? "가능한 대체품들의 모든 위험에 관한 전면적인 분석이 없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특별한 권고가 없다." "이 보고서에서 제시된 증거들에 근거하여, DEHP 의 허용치는 권고되지 못한다 (별로 허용치를 설정할 방법이 없다: 위험하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FDA 와 EU 환경위원회는 대단히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것이든 우리는 혜택과 위험 benefits and risks 를 같이 평가하고 비교해야 한다. 일부 생선에는 대단히 높은 농도의 수은과 다이옥신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생선을 먹음으로써 우리가 얻는 혜택이 위험보다 크기 때문에, 너무 많이 먹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생선의 섭취는 권장된다. 모유에는 중금속, 다이옥신, 물론 DEHP 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 위험보다는 혜택이 크기 때문에 신생아에게는 모유가 권장된다. PVC 의료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일부 품목이 있지만 이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이들의 위험이 충분히 평가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대체품을 사용하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불러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우리는 모유나 생선과 마찬가지로 PVC 의료용품이 주는 혜택과 위험을 같이 평가해야 한다. PVC 제품은 유리나 대체품에 비해 가볍고 가공이 쉬우며 깨어지지 않고 사용이 편리한 제품을 값싸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전술한 바대로 수액백의 경우는 DEHP 가 거의 용출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 대체품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 수액백을 상온보관한 것과 전자레인지로 가열한 것의 DEHP 용출량을 비교한 결과가 있는데 (Release of the plasticizer di-2-ethylhexyl phthalate (DEHP) into normal saline stored in heated and nonheated PVC bags ) 둘다에서 DEHP 는 검출불가능했다. 한국에서 수액백내의 DEHP 농도를 측정한 데이터가 있는데 2001년 식약청 검사결과 PVC 수액백에서 0.3 ug 의 DEHP 가 검출되었다. 재료의 조성을 조사해서 마치 그만큼이 다 용출되는 것처럼 사기를 치는 것은 굉장히 고약한 방식인데 2003년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 (쓰시협)에서 PVC재질 링거백에서 평균 18만 ppm(최저 13만5천 ppm, 최고 21만5천 ppm)의 DEHP 검출, PVC 이외의 재질에서는 불검출됐다고 발표한 바가 있다. 이전 글들을 읽으신 독자라면, 이 데이터가 왜 삽질인지 잘 아실 것이라 믿는다.

수액백에서 용출되는 DEHP 의 양에 대해서는,

○ 2001년도 식약청의 모니터링 결과, PVC 링거백의 링거액에서 최고 0.3 마이크로그램의 DEHP가 용출되었음을 공표

했다고 한다. 좀 더 정확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도 생업에 바빠서 식품에서 검출된 DEHP 의 양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다. 다만 플라스틱과 관련된 내분비 교란물질 라는 글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에 든 식품을 조사한 결과 DEHP가 음료에서 평균 0.065 ㎍/g, 식품에서 평균 0.29 ㎍/g 검출되었다(Page et al., 1995).

라고 하는데 0.29 ㎍/g = 0.29 ppm 이므로, 이 플라스틱 용기에 든 식품 1 kg 에는 0.29 mg 의 DEHP 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양은 수액백에서 검출되었다는 값과 비슷하지만 이미 이전글에서 쓴 것처럼 입을 통한 섭취가 가장 문제가 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대사체 MEHP 로 바꾸는 효소가 위장관에 많기 때문에) 그리고 수액주사는 입원환자가 아니면 별로 맞을 일이 없지만 식품은 매일 먹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렵고 아마 매일 먹는 식품이 더 문제가 심각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DEHP 가 문제가 된다면 차라리 식품이 문제이지 수액백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 단체는 애꿎은 수액백을 물고 늘어진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몇가지 망상을 해보았는데 (증거가 없으니까) 이것이 다음 글의 주제.




참고자료: 2003년 쓰시협에서 수액백의 DEHP 함량을 조사한 다음, 난리를 뽀갰을 때 식약청의 해명자료



담당부서 약품화학,의약품안전 작성일 2003.07.31
성 명 최 돈 웅 전화번호 380-1709
제 목 "링거백에서 환경호르몬(DEHP) 검출” 보도에 대하여


□ 언론매체 등

○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 (쓰시협)

○ 연합뉴스, 문화일보, YTN TV 등


□ 보도일시

○ 2003년 7월 31일




□ 보도내용


○ 시중병원에서 수거된 링겔백에서 내분비계장애물질인 DEHP 분석결과 발표

- 검사내역 : 포도당주사액 등 3개사 7개 제품
- 검사결과 : PVC재질 링겔백에서 평균 18만 ppm(최저 13만5천 ppm, 최고 21만5천 ppm)의 DEHP 검출, PVC 이외의 재질에서는 불검출

○ 2001년도 식약청의 모니터링 결과, PVC 링거백의 링거액에서 최고 0.3 마이크로그램의 DEHP가 용출되었음을 공표

○ DEHP는 내분비계장애물질이므로 PVC 링거백 규제기준을 마련하여 사용을 금지할 것을 촉구


□ 우리청 입장


○ DEHP는 내분비계장애 추정물질로서 플라스틱 수액용기에 가소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청은 3년간(1999-2002) 생리식염주사액, 혈액성분제제 등 수액제의 재질과 내용액을 대상으로 DEHP 등 프탈레이트류의 함유량을 분석하고 인체에 미치는 위해도를 평가하였습니다.

○ 그 결과, 수액제에서는 PVC 이외의 재질의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 DEHP 등 프탈레이트류가 검출되지 않았고, PVC 재질의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 내용액에서 최고 1.5 ppm이 검출되었습니다.

○ 그러나, 쓰시협의 보도내용중 "PVC 링겔백 재질에서 평균 18만 ppm의 DEHP가 검출되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청 조사결과에서도 확인되었으나, 재질중의 DEHP가 극히 미량 (1.5ppm)만이 내용액으로 녹아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우리청의 조사결과를 가지고 PVC 재질의 용기로 된 수액제 및 혈액성분제제의 단일·복합투여 등 여러가지 노출시나리오를 고려하는 한편 DEHP의 생식독성자료를 활용하여 위해도를 평가한 결과,

- 위해지수가 0.00 ∼ 0.49에 해당하여 현 오염수준에서는 유해영향이 발생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 위해지수가 1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 유해발생 가능성이 없음.


□ 향후대책

○ 현재 의약품의 수액제용기에 DEHP 사용을 금지하거나, 수액제에서 용액으로 녹아나오는 DEHP의 양을 규제하고 있는 나라는 없으나, DEHP가 내분비계장애 추정물질임을 감안,

- 우리청에서는 선진국의 안전성 정보 등을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필요시에는 수액제의 PVC용기를 사용함에 있어서 DEHP 양에 대한 규제여부를 고려하겠으며,

- 우선 수액제 제조업소에 대하여는 가능한 한 PVC 이외의 재질의 용기를 사용하도록 권고하는 등 행정지도를 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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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이방매트의 문제 6: 왜 PVC 인가? 2005/06/02 15:30 #

    서울환경연합 양장일 사무처장이 쓴 병원과 제약회사, PVC Free 실천할 때다 라는 칼럼에는 이에 따라 유럽의회는 의료용품에서 PVC가 사라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덴마크는 PVC 제품에서 DEHP 첨가를 금지시켰다. 라는 대목이 있다. 유럽의회 환경위원회에서는 DEHP 가 인간에게 내분비교란을 일으킨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허용치 권고안마저 안냈다는 사실을 이미 지난 글에서 쓴 바가 있다. 이전 글을 찬찬히 읽어보신 독자라면, 서울환경연합 및 기타 여러 소위 환경단체 및 시민단체들이 마치 상의라도 한......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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