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방매트의 문제 4: 의료용품의 DEHP 문제. by 기불이

이전 글 (놀이방매트의 문제 3: 심각한 DEHP 오염.) 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1) DEHP 오염은 심각한 문제이다.
2) 주되게는 입을 통한 섭취가 문제가 되고 그 다음은 실내공기를 통한 섭취가 문제가 된다. 물이나 바깥공기를 통한 섭취는 무시할만한 수준.
3) 놀이방매트에 DEHP 가 얼마가 들어있든 코팅이 되어있는 한 실제로 얼마가 흘러나오는가와 DEHP 함량은 연관이 없다.
4) 동물실험결과에서 내분비교란 및 발암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인간에게 해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타민 관련글들에서 이미 쓴 것처럼 비타민 C 및 E 등등은 동물실험에서 암을 예방하고 심지어 치료도 했다는 결과가 있는데 사람에게서는 그런 효과를 관찰하지 못했다. 특히 설치류 (쥐) 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5) 특히 유아에게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EU 에서는 3 세 이하를 위한 장난감에는 PVC 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미국 및 캐나다에서는 입에 들어가는 종류에 PVC 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6) 비일상적인 환경에서 중대한 문제는 의료용품을 통한 오염이다.


그리하여 이 글은 의료용품의 DEHP 문제에 관한 것이다.

전술한 것처럼 PVC 는 가소제 및 각종 첨가제와 혼합함으로써 투명에서 불투명까지, 랩에서 파이프까지 자유자재로 가공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널리 사용되어온 고분자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의료기기에 유리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 유리기구들은 (가령 주사기 및 수액병) 사용후 세척하고 살균하여 재사용해야 했다. 아무리 잘 세척하고 살균한다고 해도 한번 쓰고 버리는 것보다 더 위생적일 수는 없는 법. 유리기구는 무겁고 쉽게 깨어진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2차 대전이후 일회용 의료기기의 사용이 늘어났는데 많은 의료기기가 요구하는 물성을 값싸고 쉽게 구현할 수 있는 PVC 가 아주 빠른 속도로 유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PVC 의료용품의 예는 수액백, 혈액백, 주사기, 각종 튜빙 및 기타 의료기기들이 있다. 이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혈액백과 튜빙, 의료기기이다. 어째서 혈액을 PVC 백에 담는가. 당연하게도 PVC 가 혈액백에 요구되는 물성을 가장 잘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저온에서 부서지지 않고 깨지지 않는 좋은 물성을 싼 가격에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PVC 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혈소판백인데, 혈소판은 산소가 자유롭게 드나들어야 안정해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데 PVC 는 산소교환이 좋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튜빙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대체품목이 있기는 하지만 PVC 만큼 부드럽고 쉽게 다른 기기에 부착할 수 있으면서 싼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료용품은 그만큼 중대한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사용된다. 의료용품에서 나오는 DEHP 에 의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튜브에 의지해서 급식을 받는 사람들이나 수혈받는 사람들, 혈액투석을 받는 사람들이다. 전술한대로 DEHP 는 신생아나 유아에게 가장 큰 위험이 되고 그래서 특히 호흡곤란에 시달리는 신생아가 문제가 된다. 신생아가 호흡을 못하게 되면 뇌가 손상되거나 발달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런 경우 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라고 불리는 장치로 온몸의 피를 순환시키면서 산소-이산화탄소 교환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신생아의 피가 PVC 튜빙 및 기기에 오랫동안 노출되기 때문이다.

DEHP 는 내분비교란물질로 의심되기 때문에 (쥐 실험에서 안티-안드로젠으로 기능한 결과가 있다. Toxicology, 2005, 208, 115-121. 등) 가장 크게 염려가 되는 것은 남자 신생아 및 남자 유아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그러나 동물과 달리 사람은 함부로 실험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짐작만 할 뿐 확실한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 쥐같으면 어린 쥐에게 고농도로 DEHP 를 주입하고 자라면서 성기관이 잘 발달하나 관찰할 수 있겠지만 수정란도 함부로 실험할 수 없는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는 것.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할 수 없이 DEHP 에 오염된 어린이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호흡곤란 때문에 ECMO 신세를 진 적이 있는 어린이들이 그들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ECMO 신세를 진 적이 있는 어린이들의 발달을 추적조사한 결과가 있다. 1989 년의 연구에 따르면 ECMO 신세를 진 신생아는 3-10 일간의 치료기간동안 42-140 mg DEHP/kg/처치기간 만큼 노출되었다고 한다 (N. Engl. J. Med., 1989, 320, 1563.) 이 값은 대단히 고농도로, 쥐에서 성기관 발달장애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양이다. 그래서 1989 년 부근에 ECMO 처치를 받은 어린이 19 명 (14-16세, 남자 13 명 여자 6 명) 을 대상으로 성기관의 발달정도 및 혈중 호르몬 농도를 측정한 결과가 있다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2004, 112, 1339-1340.). 특히 남자아이들은 성기의 길이 및 고환의 크기, 혈중 호르몬 농도를 측정하고 기타 여러가지 조사를 수행하였는데, 마르판 증후군 (Marfan syndrome, 마르팡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특정유전자의 이상으로 키가 크고 얼굴이 길며 손가락이 길고 관절이 유연한 특징을 보이며 혈관에 이상을 일으키는 유전병.) 을 앓은 어린이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모든 검사에서 정상이었다. 비록 표본수가 적기는 하지만 이것은 참으로 값진 결과로서 신생아때 고농도의 DEHP 에 폭로되더라도 이후 성장과정에서 성기관의 발달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다른 여러 연구결과는 인간과 쥐는 특정 수용체가 다르기 때문에 쥐에게 안티-안드로젠으로 기능했던 DEHP 가 인간에게는 같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 이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게다가 1997 년에 측정된 데이터에는 ECMO 를 통한 DEHP 폭로량이 0 - 34.9 mg/kg/처치기간 으로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Crit. Care. Med., 1997, 25, 696-703.). 0 (정확하게는 검출불가능) 이라는 값이 눈길을 끄는데 이것은 헤파린 코팅된 튜빙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헤파린을 코팅한 튜빙을 사용하면 DEHP 의 용출은 검출불가능할 정도가 된다 (용출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제작방법의 발전으로 최근의 PVC 튜빙은 특별히 코팅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과거에 비해 훨씬 적은 양만이 용출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검출량이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DEHP 의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비슷한 물성을 얻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한 예로 여러가지 종류의 탄성체 (합성고무) 를 도입한 연구도 있다 (J. Elastomers and Plastics, 2004, 36, 19-31). 그러므로 신생아 시기에 의료용품을 통해 고농도의 DEHP 에 폭로되더라도 사춘기 성기관의 발달에 큰 영향은 없다고 생각되며 오늘날 고농도의 DEHP 에 폭로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된다.

놀이방매트의 성분분석을 통해 놀이방매트에 무려 43% 의 DEHP 가 포함되어 있다고 거품을 문 시민단체도 있는데 의료용품에 의한 DEHP 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라면이 짜다고 경고문을 붙여야 한다고 절규했던 서울환경연합 (`잘 팔리는' 국내 라면들 너무 짜다) 이 이 문제를 5월초에 제기했던 모양이다 (주요병원, 인체및 환경 피해 PVC 수액백 사용 드러나...). 기사를 잘 읽어보시면 꽤 그럴싸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헛소리인데 이것이 다음 글의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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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이방매트의 문제 5: PVC 수액백 과연 해로운가? 2005/05/28 14:37 #

    서울환경연합 이 최근 병원에서 사용중인 수액백이 PVC 로 만들어졌다며 PVC 수액백의 사용을 중지하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주요병원, 인체및 환경 피해 PVC 수액백 사용 드러나...). 이 단체는 PVC 의 DEHP 가 용출되므로 PVC 수액백은 위험하다고 주장했고, 이 기사에서는 유럽에서 PVC 의료용품의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썼다. 과연 이게 진실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이 포스팅의 주제.우선 해당기사의 중요부분을 인용하자면, 주요병원, 인체및 환경 피해 PVC 수액백 사용 드러나... DEHP의 유해성은 하버드대 연구...... more

덧글

  • 엘펜 2005/05/27 20:54 # 삭제 답글

    오늘 DEHP관련 포스트를 쭉 읽고나니 딱 phthalate 관련기사가 떠서 링크합니다.
    http://uk.news.yahoo.com/050527/140/fjwhg.html
    태클걸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고 최신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입니다. ^^;
  • 기불이 2005/05/27 23:59 # 답글

    정말 따끈따끈한 결과로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열심히 인쇄중인 논문이더군요. 자세히 읽어본 후에 업데이트를 하겠지만 이전 결과와의 차이는
    1) 신생아의 성적 발달정도를 측정했다는 점 (이전까지의 관심은 어릴 때 폭로된 DEHP 가, 성기관이 한창 발달하는 사춘기에 영향을 주느냐는 것)
    2) 산모의 소변중 프탈레이트류의 대사체를 분석했다는 점.
  • 기불이 2005/05/27 23:59 # 답글

    3) 이 연구에서는 유아의 항문성기간거리를 측정하고 이 값을 체중으로 나눈 다음 나이를 보정하여 AGI 라는 인덱스를 구하고, 산모의 소변에서 분석된 프탈레이트류의 대사체의 농도와의 연관관계를 조사했는데, DEHP 의 다른 대사체들은 아슬아슬한 관련을 보였는데 (있다고 하기도 그렇고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본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DEHP 의 대사체 MEHP (이것이 내분비교란을 일으킨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는 "관련없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 기불이 2005/05/27 23:59 # 답글

    그리고,

    4) 이것은 중요한 점인데, 이 연구는 인간에게서 "상관관계" 를 처음으로 보였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상관관계가 반드시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5) 이 연구에서 DEHP 의 주된 대사체인 MEHP 가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오히려 다른 가소제보다 DEHP 가 더 안전하다고 말할 수도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 만일 환경단체 등에서 이 연구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인용한다면 무덤을 파는 셈.

    더 자세한 논의는 다른 글에서 하기로 하죠.
  • 기불이 2005/05/28 03:10 # 답글

    해당논문 링크는
    http://ehp.niehs.nih.gov/members/2005/8100/810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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