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방매트의 문제 2: DEHP 검출시험의 예 by 기불이


원래 예정했던 순서가 있었는데 놀이방매트의 문제 1. 에 대한 반응을 감안하여 검출시험에 대해서 먼저 씁니다. 그 전에 강조해야 할 것은, DEHP 란 정말로 심각한 문제이며 우리는 아무리 PVC 를 안쓰려고 발버둥쳐봐야 DEHP 오염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 이 글은 주되게 Indoor Air, 2004, 14, 120-128 을 참조하였습니다.

PVC 는 워낙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서 우리가 접하지 않을 길이 없는데 가령 벽지, 장판, 수도관 및 각종 파이프, 전선 피복, 인조가죽 (소위 레자라고 하는.), 자동차 용품, 각종 플라스틱 용품, 장갑 등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사용되는데 부드러운 것일수록 가소제가 많이 사용된다. 옛날에는 DBP (다이부틸프탈레이트) 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DBP 는 끓는 점이 다소 낮아서 (340 도) 현재는 DEHP 로 대체된 상태 (DEHP 의 끓는 점은 385 도) 이다. 끓는 점이 50도-240도 인 것을 VOC (Volatile Organic Compound 휘발성 유기물질) 라고 하고, 240도-400도 인 것을 SVOC (Semi VOC, 반휘발성 유기물질) 이라고 한다.

내가 볼 적에 놀이방매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벽지, 인조가죽 및 장판이다. 특히 한국은 온돌문화이기 때문에 겨울내내 장판은 뜨끈뜨끈하게 달궈지며 벽지도 겨울내내 뜨끈뜨끈한 공기에 노출될 뿐 아니라 소파에 흔히 사용되는 인조가죽은 온가족이 다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DEHP 의 용출은 여러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지는데 주되게는 온도가 높을수록 많이 용출되고 접촉하는 용매가 지용성일수록 많이 용출한다 (가령 물보다 알콜에 더 많이 녹아나온다. DEHP가 지용성이기 때문에.). 온가족이 사용하는 벽지에서 (혹은 장판에서, 레자소파의 레자에서) 내분비교란물질인 DEHP 가 XX% 검출됐다!! 이런 거 터뜨리면 대박일텐데 혹시 시민단체 차릴 분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본론으로 가서, Indoor Air, 2004, 14, 120-128 이 논문은 덴마크에서 널리 사용되는 PVC 제품에서 DEHP 가 얼마나 흘러나오는가를 정량적으로 측정한 시도. 덴마크에서는 1992년에 9500 톤의 프탈레이트 계통의 가소제를 사용했는데 이중에서 9200 톤이 PVC 에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덴마크 사람 한 사람당 1.9 kg 이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실험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다시 재론할 필요도 없다. 엄격한 실험디자인은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의미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중요하다. 그리고 비슷한 결과의 비교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표준화된 장비와 실험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다른 장비와 다른 방법에서 얻은 데이터를 비교하는 것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예를 들어 캡슐이나 정제에서 약물이 얼마나 빨리 녹아나오는가를 테스트하는 용출시험기의 경우 표준화된 기계를 사용하는데 시료를 채취하는 위치까지 정해져있다. 가령 비이커 벽면에서 몇 cm, 용매표면에서 몇 cm 깊이 이런 식으로. 그래서 이 실험의 결과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 실험의 디자인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1. 실험챔버 chamber

유리와 스테인레스 골격으로 만들어진 Climpaq (Chamber of Laboratory Investigations of Materials, Pollution and Air Quality) 를 사용하였다. 전체 부피는 50.9 리터이며 내부에 시료를 놓은 다음, 내부에 설치된 팬에 의해 시료위로 공기가 순환되며 휘발성 유기물질들의 휘발을 돕게된다. 공기가 흐르는 속도는 일반적인 빌딩의 순환속도와 비슷하게 설정되며 온도와 상대습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공기는 외부의 급기 시스템에 의해 공급되며 공기의 흐름을 측정하기 위해 소량의 불화황 (SF6) 가스가 첨가된다. 이로서 일정한 속도로 공기가 공급되는지 알 수 있다. 내부의 공기가 순환되는 속도는 4 군데 포인트에서 측정되는데 이 포인트들은 시료위 2 cm 지점 에 있다. 이것은 일정속도로 공기가 순환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공기내의 유기물질 농도는 시료위 10 cm 지점과 시료 아래 10 cm 지점에서 측정된다. 이렇게 엄격한 조건에서 실험을 하는 것은 데이터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이후로도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하면 데이터를 비교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2. 실험준비

실험전, Climpaq 챔버는 염기성 세제로 깨끗이 씻고, 뜨거운 물로 헹군 다음, 마지막으로 증류수로 세척하고 깨끗한 공기로 48 시간동안 건조하였다. 시료를 챔버에 넣기 전에, 공기중의 유기물질 농도를 측정하였다 (백그라운드). 시료를 넣은 후 측정된 값에서 이 값을 빼면, 시료에서 나온 양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챔버내의 프탈레이트 가소제 농도는 6, 35, 62, 105, 150 일에 측정하였다. 모두 5번만 측정한 것은, 비싼 비용 때문.

3. Sink effect 및 포화 기체압 측정.

실험이 끝난 후, 시료를 제거하자마자 바로 챔버를 봉하고 25일동안 3 번 배기되는 공기중의 프탈레이트 농도를 측정하였다. 이것은 흘러나온 프탈레이트가 다른 곳 (이 경우는 챔버 그자체) 에 얼마나 많이 흡착되는가를 보기 위한 것. 만일 챔버에 흡착되지 않았다면, 시료가 없을 때 배기되는 공기에는 프탈레이트가 없을 것이고 휘발된 프탈레이트가 챔버에 흡착된다면 시료가 없어도 계속 프탈레이트가 나올 것이다.

두껑이 없는 비이커에 50 ml 정도의 프탈레이트 가소제를 넣고 Climpaq 챔버에 넣은 다음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하였다. 이것은 순수한 프탈레이트의 기체압을 측정함으로써,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이상적인 조건에서 얼마정도나 휘발되는지 보기 위한 것.


이상의 실험은 22-22.5 도 상대습도 35-55% 에서 실시되었는데 이것은 이상적인 사무실환경을 모방한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비슷한 실험을 한다면, 조금 다른 조건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가정은 보통 온돌을 사용하므로 장판이 겨울내내 뜨겁게 가열되기 때문이다.

실험결과

상세한 데이터를 인용하는 것은 독자들을 괴롭게 할 뿐이므로 상세한 데이터는 인용하지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결과는 프탈레이트의 포화공기압인데, 가소제만을 같은 조건에서 휘발시킨 결과, 포화공기압은 3.4 ug/m^3 으로 측정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환경인 31 평 아파트의 경우, 실평수는 보통 27 평 정도이지만 30 평으로 가정한다면, 30 평은 97.2 m^2 이다 (1 평 = 1.8 m x 1.8 m = 3.24 m^2). 한국 아파트의 천정높이는 2.7 m 정도인데 3 m 라고 가정하면, 30평 아파트의 부피는 292 m^3 이 된다 (3.24 m^2 x 3 m). 그러므로 30 평 아파트가 프탈레이트 가소제 (DEHP) 로 포화되었을 때 공기내에 존재하는 프탈레이트 가소제의 양은 0.99 mg 으로 계산된다 (292 m^3 x 3.4 ug/m^3). 전술했다시피 DEHP 의 끓는 점은 385 도로, 대단히 높다. 아시다시피 끓는 점이란 액체에서 휘발되어 나오는 기체의 기체압이 1 기압이 되는 온도. 그러므로 끓는 점이 높으면 실온에서의 기체압은 낮을 수 밖에 없고 이것은 그만큼 적게 휘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PVC 벽지 및 장판에 사용된 DEHP 가 아무 제한없이 흘러나온다고 해도 아파트 실내의 DEHP 농도는 그렇게 높지 않게 유지된다고 생각된다. 만일 DEHP 가 포함된 PVC 를 계속 입으로 빨아먹는다면 (가령 젖꼭지) 지속적인 유출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나마 물은 그렇게 좋은 용매는 아님) 직접 접촉이 없는 다음에는 크게 상관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sink effect 실험결과, 시료를 제거한 후에도 낮은 농도의 DEHP 가 지속적으로 검출됨으로써, 일단 휘발한 DEHP 는 다른 곳에 흡착된 후 천천히 흘러나온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지금당장 DEHP 가 포함된 장판을 다 제거한다고 해도 벽이며 천정이며 가구에 흡착된 DEHP 가 천천히 나오게 되므로 DEHP-free 한 환경이 되려면 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적은 양이 나온다고 해도, 이게 몸에 좋을 리는 없으니 PVC 장판 및 벽지를 쓴다면 (게다가 온돌로 히팅한다면) 이따금씩 환기를 시켜주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놀이방매트는 그 위에서 노는 것을 중지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겨울에 뜨끈뜨끈해질 것이니 역시 환기가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실험의 의의는 공기를 통해 DEHP 가 흡수된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 엄격한 실험디자인을 사용하여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고, 이후 다른 결과와 비교하기 쉽도록 했다는 것.

그런데 DEHP 가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호흡을 통한 흡수가 아니다. 즉 DEHP 오염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벽지나 장판 (또는 놀이방매트) 가 아니라는 것.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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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이방매트의 문제 3: 심각한 DEHP 오염. 2005/05/24 15:28 #

    이전 글들을 보면 마치 DEHP 오염이 별거 아닌 거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심각해서 지구 환경 곳곳에서 DEHP 가 발견되지 않는 곳이 별로 없을 정도. 그동안 사용된 DEHP 가 흘러나와서 여기저기 축적되고 이것은 결국 식품을 통해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전 글들에서 강조한 것은, 지금 소위 시민단체가 하고 있는 짓은 변죽을 울리는 문제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중요한 문제들은 따로 있다. 이 글은 주되게 Reductive Toxicology, 2004, 19, 27-33. 를 참고하였다. DE...... more

덧글

  • 『無能軍神』신치오드 2005/05/24 04:43 # 답글

    안녕하세요, 처음 들어와서 링크 신고하게 된 신치오드라고 합니다.

    우연찮게 흘러들어와서, 이전의 모든 포스팅들로 빠져들며 읽고 있습니다. 감상을 짧게 들자면,

    역시나 세상은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OTL

    그런 의미에서 이런 곳을 만드시는 주인장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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